[인터뷰]'굿캐스팅' 이상엽 "연기가 없으면 인생 재미 없을것 같아요"

/ 사진=웅빈이엔에스 제공

“놀이공원에서 좋은 사람들과 재미있게 놀고 나온 기분이에요. 드라마는 잘 끝났지만 끝난 것 같지 않은 느낌이에요. 배우들끼리 시즌2 이야기도 하고 있어서인지, 극 중 각각의 캐릭터들이 아직 살아있는 것만 같아요.”

최근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상엽은 사전제작으로 제작된 SBS 월화드라마 ‘굿캐스팅’의 촬영이 이미 지난 2월 마무리됐음에도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했다.

“호흡이 긴 드라마처럼 느껴져요. 드라마를 통해 맺은 소중한 인연들과의 관계가 이어지다 보니 거의 9~10개월 동안 자연스레 작품 이야기만 계속하게 됐어요. 유럽 속담 중에 ‘사람이 죽으면 3~5일이고 그 사람 얘기만 계속해서 그 사람을 보내 준다’는 말이 있어요. 저도 이야기를 하루 종일 하면서 맡았던 캐릭터를 보내주곤 했는데 이번엔 좀 느낌이 다른 거 같아요. 여운이 굉장히 길지 않을까…”

‘굿캐스팅’은 국정원 현직에서 밀려나 책상만 지키던 여성들이 현장 요원으로 차출돼 위장 잠입 작전을 펼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액션 코미디다. 이상엽은 금수저 집안에 완벽한 학벌, 꽃미남 외모까지 갖춘 일광 하이텍 대표이사 ‘윤석호’를 연기했다. 겉보기엔 완벽남 그 자체지만, 이상엽이 보는 윤석호는 홈페이지 캐릭터 소개와는 조금 달랐다.

“윤석호는 상처로 인해 벽을 친 사람이에요. ‘이 사람도 결국 인간적인 사람이구나. 허당스러움과 약함도 충분히 다 가지고 있구나’를 느꼈죠. 극이 흘러갈수록 20대 석호와 비슷한 모습들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어요. 석호가 백장미(최강희)를 만나면서 잊고 있었던 그리움, 애틋한 감정, 순수한 기억들을 다시 떠올리며 자기를 되찾아서 다행이라 생각했죠.”

“사실 처음에는 좀 멋있고 싶었어요. 그래서 멋도 부리고 싶었는데 그 ‘멋’이 딱 생기는게 아니라서 쉽지 않더라고요. 초반에는 고민도 하고 스트레스도 받았는데 생각해보니 제가 석호를 단순히 ‘멋있는 사람’, ‘냉혈한’ 등 외면적인 부분으로만 생각했더라구요. 깨알 재미나 호기심 등을 가진 사람인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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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호란 캐릭터가 만들어지기까지 상대 배우 최강희는 큰 힘이 됐다. 그는 이상엽에게 느낌 하나하나를 살린 연기를 보여주거나 소스를 제공함으로써 연기 방향을 잡도록 도와줬다. 함께 대사를 맞추고, 여러 신을 촬영하면서 이상엽은 어떻게 석호를 연기 해야할지 확신을 갖게 됐다.

“20살의 석호와 35살의 석호를 동시에 연기하면서 ‘이렇게 해도 될까’ 헷갈리는 상황도 있었어요. 촬영하면서 20대의 석호가 35살이 됐다고 해도 사람이 완벽하게 변할 순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 과정엔 늘 강희 누나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있었어요. 누나는 애기애기한 면도, 강인함도 있고, 여러가지를 다 가진 배우라는 걸 느꼈거든요. 그런 누나를 발견하는 게 재미있으면서도, 존경스러웠어요. 누나의 리드가 기억에 남아요”

최강희와 윤석호의 로맨스도 애틋했지만 변 비서와의 브로맨스도 그 못지 않은 뭉클함을 자아냈다. 또 같이 나오는 분량은 많지 않았지만 함께한 김지영, 유인영, 이종혁, 이준영 등 동료배우와의 합이 좋아 이상엽은 마치 새로운 가족을 얻은 느낌이다.

“촬영이나 연기 외에 재호 형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형을 더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정이 많이 들기도 했고, 서로를 좀 애틋하게 생각하는 게 있었어요. 결말을 알고 있던 상황이어서 형이 연기할 때마다 괜히 혼자 마음이 아프기도 했어요. 연기 호흡이 좋아서 나중에는 꼭 형이랑 진짜 덤앤더머 같은 작품을 해보고 싶어요.”


“옛날부터 이종혁 형 팬이었어요. 연습생 때 형을 보고 멋있어 했던 기억이 있는데, 이번 현장에서 만나보니 생각보다 너무 유쾌하고 재미있어서 형이랑 촬영할 때 슬픈 생각을 많이 준비해야 했어요. 조언도 많이 해주시고, 잔정도 대개 많으세요. 인영이랑은 마치 다른 드라마를 찍고 있는 사람들처럼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지영누나는 존재만으로, 같이 자리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정신적 지주였죠. 준영이는 저를 유일하게 형아라고 불러준 귀여운 동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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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엽은 월·화에는 SBS ‘굿캐스팅’의 ‘윤석호’, 주말에는 KBS2 ‘한 번 다녀왔습니다’의 ‘윤규진’을 연기하면서 걱정도 많았다. 다행히 편성이 겹치지 않았고, 양측에서 오케이 해준 덕에 그는 각각의 캐릭터를 살려 연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촬영이 겹치지 않아서 혼란스럽진 않았지만 윤석호와 윤규진을 방송으로 볼 때마다 조마조마했어요. 전 다르게 연기하고, 상황도 다르지만 어떻게든 이상엽이 연기하는 거라 비슷한 부분이 보일 수도 있잖아요. 사람들이 그런 점을 불편해하거나 식상해할까봐 막판까지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다행히 ‘규진아 너 여기서 뭐해’, ‘너 나희랑 이혼하더니 강희 만나는 구나’ 같은 귀여운 댓글들을 달아주셔서 감사했어요.”

이상엽은 연기 외에 노래에서도 숨겨왔던 자질을 보였다. 노래를 좋아하지만 잘 부르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밝힌 그는 ‘굿캐스팅’의 OST ‘빨간 책가방’을 직접 불렀다. 노래는 좋은 반응을 얻었고, 최강희와 함께하는 신에서는 어김없이 등장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정말 노래를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농담 삼아 감독님께 툭툭 던지듯 말했는데 어느날 진짜 음악 감독님께 전화가 왔어요. 정신을 차려보니 제가 녹음을 하고 메이킹을 찍고 있더라고요. 너무 재미있고 신기한 경험이었죠. 제 목소리가 나오는 게 신기해서 노래를 200~300번은 들은 것 같아요(웃음). OST는 모든 배우들의 버킷리스트까진 아니더라도 로망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최근 1~2년 사이 이상엽은 tvN ‘톱스타 유백이, 채널A ’평일 오후 세시의 연인” 등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해왔다. tvN 예능 ‘시베리아 선발대’에도 출연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느라 한 달 이상 쉰 적이 없었다. 그래도 현장에 있는 게 제일 재밌다고.

“비슷한 느낌의 드라마가 연속이었으면 저 스스로 약간 매너리즘에 빠졌을 수도 있는데 느낌들이 다 달랐었어요. 모든 드라마가 다 느낌이 다르긴 하지만 계속 재미있었어요. 저는 현장에 와서 좋고 현장에 있는게 행복해서 힘들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가끔 멘탈이 떨어질 때는 제가 나왔던 지난 작품들을 보면서 저건 ‘이상엽이었구나, 좀 더 극 중 인물을 연기해야지’하고 정리하며 마음을 다잡고는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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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KBS2 ‘행복한 여자’로 데뷔한 이상엽은 어느새 14년차에 접어들었다. 한때는 좋은 배역이나 캐릭터를 맡으면 ‘잘해야지’라고 마음먹기보다 불안과 걱정으로 자신을 괴롭히기도 했다.

“‘기회의 다른 말은 위기’라는 말이 있는데 저는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한 게 아니라 불안함과 걱정으로 저를 눌러왔던 거 같아요. 그런데 좋은 선배들과 좋은 작품을 하며 그런 생각이 많이 사라졌어요. 박근형 선생님께도 배웠지만 나 혼자 스트레스 받는다고 해서 되는게 아니더라구요. 연기는 혼자하는게 아니라 협업이더라고요. 그래서 전 사람들과 같이하는 이 일이 좋아요.”

현장에 있는 게 제일 재미있고, 연기 외에 다른 것은 별로 재미가 없다는 천상 배우 이상엽. 그의 꿈은 모든 에너지를 연기에 쏟는 것,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연기를 하는 것 이다.

“예전에는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나, 맞게 가고 있나’ 불안했는데 30대 후반까지 이 일을 해오다 보니 ‘그래, 그럼 이 정도까지 해오고 있으면 나쁘지 않네’란 생각이 드는 거 같아요. 지금처럼 잘 갈 거라, 잘 될거라 생각해요. 전 죽을 때까지 연기를 했으면 좋겠어요. 연기가 없으면 인생이 재미없을 것 같아요.”

/안정은기자 seyo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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