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쿡 애플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애플 본사의 스티브잡스극장에서 열린 ‘세계개발자대회’(WWDC 2020)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애플이 인텔로부터 15년간 공급받던 반도체칩을 자체 설계하기로 하면서 ‘반도체 업계의 신흥 강자’로 떠오르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앞서 애플은 전날인 22일 미 캘리포니아주 쿠퍼티노 본사 애플파크에서 온라인으로 개최한 ‘세계개발자대회 2020’(WWDC 2020)에서 올해 말부터 자사 데스크톱·노트북 맥(Mac)에 자체 설계한 시스템온칩(SoC) ‘애플 실리콘’을 탑재하겠다고 발표했다. 애플은 자체 설계한 반도체칩이 전력 소모는 더 적으면서 고성능 그래픽을 구현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WSJ은 이 같은 애플의 움직임에 대해 과거 아웃소싱을 확대했던 것에서 벗어나 팀 쿡 최고경영자(CEO) 체제에서는 외주를 준 사업의 많은 부분을 되찾아오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많은 외부업체의 부품을 자체 설계한 부품으로 대체하는 장기 전략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다. 애플은 2010년 아이폰에 들어가는 반도체칩을 자체 생산하기 시작했다.
정보기술(IT) 애널리스트 웨인 램에 따르면 아이폰의 핵심 부품 중 애플이 자체 생산한 맞춤형 부품은 비용 면에서 약 42%를 차지한다. 5년 전 8%에도 못 미치던 것에서 5배 이상 뛴 것이다.
부품 자급자족은 비용 절감, 성능 증대 등의 효과와 함께 제품 출시 일정에 대한 애플의 통제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시장에서는 맥의 반도체를 자급하면 애플이 컴퓨터 1대당 75∼150달러의 비용을 낮출 수 있고 이는 소비자 편익이나 주주 이익으로 환원될 것으로 보고 있다.
WSJ은 이런 애플의 전략이 창업자인 고(故) 스티브 잡스가 만든 철학, 즉 핵심 기술의 보유가 경쟁력을 제공한다는 철학에서 나온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직 애플 직원들은 애플이 수년간 외부업체의 부품에 의존하면서 부품을 자체 설계할 공학적 깊이와 전문성을 구축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애플이 독자 반도체 설계를 추구하면서 반도체 산업계의 지형까지 흔들리고 있다. 당장 인텔의 경우 맥에 반도체 공급을 중단하면 연간 매출액의 2∼4%에 해당하는 20억달러(약 2조4,000억원)를 잃게 된다.
캘리포니아공과대학(CIT) 카버 미드 교수는 이런 현상이 더 높은 성능을 추구하는 산업의 자연스러운 전개이지만 애플 공급업체들에는 그 파급 효과가 더 가혹하다고 말했다. 많은 공급업체가 자신의 제품을 애플이 자체 생산하기 시작할 수 있다는 두려움 속에 애플과 계속 거래한다는 것이다. 미드 교수는 “누구나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안다. 따라서 이는 알면서 내리는 결정이다. 악마와의 춤을 출 것이냐 아니면 거절할 것이냐”라고 말했다.
/노희영기자 nevermin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