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기업 등 민간 부문의 빚이 사상 처음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를 넘어섰다. 특히 가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고용 충격 등으로 소득은 줄어드는데 주택담보대출 등 빚은 늘어나고 있어 채무상환 부담이 갈수록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2020년 6월)’에 따르면 지난 3월 말 명목 GDP 대비 민간(가계·기업) 신용(대출·채권·정부융자 등) 비율은 201.1%로 사상 처음으로 200%를 넘었다. 지난해 4·4분기 대비 4.1%포인트 늘어나며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00년 이후 가장 큰 폭으로 증가했다. 주택담보대출이 전년 대비 5.7% 늘어나면서 가계 부채를 크게 늘렸다.
빚은 빠르게 늘어나는데 소득 증가는 더뎌지면서 처분가능소득 대비 부채 비율은 1·4분기 말 기준 163.1%로 2007년 1·4분기 통계 작성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가계의 채무상환 부담이 그만큼 늘었다는 의미다. 문제는 코로나19 사태로 고용 악화와 자영업 업황 부진이 계속될 경우 가계 채무상환능력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외환위기만큼 고용 충격이 발생했을 때 임금근로자 45만8,000가구의 감내 기간이 1년 미만인 것으로 추산했다. 해당 가구들은 보유한 금융자산 등을 처분해도 1년 안에 유동성 부족에 시달릴 수 있다는 의미다. 자영업자 역시 코로나19 확산 직후처럼 매출이 감소했을 경우 30만1,000가구가 1년을 못 버틸 것으로 봤다.
한은은 코로나19로 기업의 재무건전성도 저하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한은은 코로나19 충격이 내수 2·4분기, 해외수요 3·4분기까지 미치는 기본 시나리오와 연중 내내 지속되는 심각 시나리오로 나눠 따져봤다. 이에 따르면 기업 수익성을 나타내는 영업이익률은 2019년 4.8%에서 기본 시나리오 2.2%, 심각 시나리오 1.6%로 악화될 것으로 추산된다.
채무상환능력을 보여주는 기업의 이자보상배율은 2019년 3.7배에서 기본 시나리오 1.5배, 심각 시나리오 1.1배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심각 시나리오에 따르면 이자보상배율이 1 미만인 기업 비중은 50.5%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자보상배율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값으로 1 미만이면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도 낼 수 없다는 의미다. 코로나19 사태가 한 해 동안 지속되면 전체 기업의 절반 이상이 좀비기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시스템도 코로나19 충격으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반적인 금융시스템 상황을 보여주는 금융안정지수(FSI)는 1월 4.7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다가 2월 8.3으로 상승하며 주의단계에 진입했다. FSI가 8~22이면 주의단계이고, 이를 초과하면 위기단계다. 주의단계는 ‘대내외 충격이 금융시스템에 영향을 미치나 심각하지 않음’을 의미하고, 위기단계는 ‘심각한 영향을 미침’을 나타낸다. FSI는 3월 17.1에 이어 4월 22.3까지 치솟으며 위기단계에 진입했다가 5월 18.0로 소폭 하락하며 위기단계에서 벗어났다. 정규일 한은 부총재보는 “코로나19 재확산 가능성으로 경기전망 불확실성이 크고, 미중 갈등 고조 등 불안요인이 잠재해 있어 높은 수준의 경계감이 필요하다”며 “정부와 협력해 신용경계감 강화와 유동성 경색 심화 등에 적극 대응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 시스템 안정 유지를 병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원기자 j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