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최대 엔니지어링 회사 지멘스는 ‘가상공장’을 운영한다. 공장 자동화 사물인터넷(IoT) 플랫폼인 ‘마인드스피어’를 공장 설비에 부착하고 이를 가상현실 속 공장과 연결한 것이다. 이를 통해 장비관리 현황, 유지보수 사정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된 지멘스는 재작업률을 약 20% 감소시키는 효과를 냈다. 아울러 기존 공장 대비 에너지 소비량을 3분의1 수준으로 줄였고 제품 출하에 걸리는 시간도 절반으로 단축했다.
‘디지털트윈(Digital Twin)’이 전 산업 분야와 접목돼 혁명적 변화를 초래할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현실과 동일한 가상세계, 즉 ‘디지털쌍둥이’를 만들어 실시간 시뮬레이션이 가능해지는 개념으로 단순히 겉모습만 구현한 3D모델링과 달리 실시간으로 쌍방 피드백이 가능하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클라우드컴퓨팅·IoT·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의 핵심기술들과도 밀접하게 연결돼 시너지를 낸다. 자율주행 솔루션을 출시하기 전 실제 도로상황과 같은 환경에서 모든 물리적 요소를 동일하게 갖춘 가상차량으로 실시간 시뮬레이션이 가능하다고 상상해보자. 수천 번, 수만 번 주행해도 비용이나 리스크가 실제 상황 대비 현저히 낮아 기술적 정확도를 효율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다. 자율주행 같은 신기술은 물론 시뮬레이션이 까다로운 항공·우주, 에너지 발전 등 전 산업 분야에서 디지털트윈이 각광받는 이유다.
디지털트윈은 특히 제조업 분야에서 상상하지 못했던 생산성 증대를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지멘스를 비롯해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프랑스 다쏘시스템 등 글로벌 기업들이 디지털트윈 개념을 업무와 제품 생산에 선제적으로 도입하는 이유다. 맥킨지는 디지털트윈 도입으로 오는 2025년까지 자동차·물류·헬스케어 분야 등에서 최대 11조달러의 경제적 부가가치가 창출될 것으로 추정했다.
디지털트윈은 현실과 동일한 가상세계, 즉 ‘디지털 쌍둥이’를 만들어 실시간 시뮬레이션을 가능하게 한 기술이다. 단순히 겉모습만 구현한 3차원(3D) 모델링과는 달리 실시간으로 현실 속 공간과 사물에 연결돼 쌍방 피드백이 가능하다는 게 차이점이다. 기존 기술이 방대한 데이터를 효과적으로 분석하는 데 그쳤다면 디지털트윈은 여기에 더해 미래를 예측하고 대응하는 일을 가능하게 만든 셈이다.
실물세계와 가상세계를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완전한 디지털트윈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기술과의 접목이 필수적이다. 디지털트윈은 독립적 신기술이 아닌 클라우드 컴퓨팅,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이 융합된 결과물이다. 예를 들어 서울시를 디지털트윈으로 구현하기 위해서는 그래픽 기술은 물론 방대한 데이터 저장·운용을 가능하게 하는 에지 클라우드 컴퓨팅, 실제 사물을 인식하는 센서 기반 IoT, 빅데이터 분석 기술이 결합돼야 한다. 국토연구원은 3D 모델링 기술과 함께 IoT, 공간정보 기술, 보안 기술, 빅데이터 분석 기술 등을 디지털트윈에 필요한 요소기술로 꼽는다.
◇건설·제조업부터 교육·의료까지 접목=디지털트윈은 2000년대 들어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생산성을 제고하는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건설·제조업 분야가 대표적이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경우 55만개 이상의 제품에 디지털트윈 기술을 도입했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수력발전소 터빈을 디지털트윈으로 설계한 후 가동해 전력 효율성을 높이고 가동 중지시간을 줄인 게 일례다.
중철상하이공정국은 지난 2018년 우한 화학신도시에 하수처리장을 시공하는 과정에서 디지털트윈을 활용했다. 이를 통해 프로젝트 내용을 개선해 공사기간을 121일 단축했고 건설비용 127만위안(약 2억원)을 절감하는 효과를 얻었다. 포스코경영연구원에 따르면 항공·발전 분야에 디지털트윈 기반 솔루션을 적용해 연료 효율을 1% 증가시킬 경우 연간 6조~8조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산업은 물론 군사훈련을 비롯한 교육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활용된다. 미국 컨설팅 회사인 부즈앨런해밀턴은 ‘언리얼’ 게임 엔진을 활용해 낙하산부대의 비행훈련, 사격훈련 등 군사 분야의 실시간 시뮬레이션 콘텐츠를 제공한다. 3월에는 록히드마틴사가 ‘GPS IIR’ 위성 시스템의 취약점을 검토하기 위해 디지털트윈을 이용한 해킹을 시도했다. 우주 공간에서는 불가능했을 이 같은 실험을 통해 위성과 지상 관제소를 연결하는 전 과정에 대한 검토가 가능했고 취약점을 발견하는 데 성공했다.
도쿄대는 뇌 수술 훈련 및 실시간 시각화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실시간으로 환자의 뇌를 컴퓨터그래픽(CG)으로 구현하고 이 CG를 보고 시각화된 뇌를 조작해볼 수 있는 방식이다. 육안 관찰에 제한이 많은 신경외과 분야에서 의사 교육에 활용할 수 있고 향후에는 원격의료 기술과도 접목될 것으로 전망된다.
네이버랩스가 지난 18일 항공사진을 기반으로 제작한 서울시 3D 모델링 /사진제공=네이버
◇가상도시 만들어 도시계획에 활용도=도시 전체에 디지털트윈 개념을 접목해 ‘스마트시티’를 구현하려는 시도 역시 현재 진행형이다. 다쏘시스템은 2015년부터 싱가포르에서 ‘버추얼 싱가포르’ 프로젝트를 진행해 도시 디지털화를 완료하고 지하철·배수관·케이블선 등의 정보를 포함한 지하 디지털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 LA와 영국 런던 역시 가상도시를 시민들의 주거 편의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에 활용하고 있다.
서울시 역시 스마트도시 ‘버추얼 서울’을 조성하기 위해 네이버랩스와 협력하고 있다. 가상 서울시는 미세먼지와 도시 열섬현상 완화를 위한 바람길 조성, 소방시설물 관리 등 다양한 방면에서 디지털트윈을 활용할 계획이다. 더 나아가 아파트나 건물을 세울 때도 조망권·일조권·스카이라인 등 다양한 변화를 손쉽게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성장 가능성 큰데…국가 차원 전략 부재=디지털트윈 실현을 위해 국가 차원에서 전략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에서는 기술의 상호 운용성을 보장하기 위해 일찌감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있다. 미국은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이 주도하는 ‘디지털트윈 컨소시엄’을 구성해 기술의 상호 운용성을 제고하고 정책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범용성이 떨어지는 운영체제(OS) 위에서 다양한 소프트웨어가 개발되기 힘들듯이 서로 다른 기업과 기관이 자유롭게 기술을 공유할 수 있어야 디지털트윈을 완성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영국은 지난해 국가 차원의 디지털트윈 전략을 위한 기본원칙인 ‘제미니 원칙(Gemini principles)’을 확립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역시 올 2월 “국가 인프라 고도화와 관련된 시장·산업 육성 측면에서 디지털트윈의 조기 활성화 노력이 시급하다”며 “데이터와 프레임워크가 일원화되지 않아 기업의 활용이 제한되고 기업 간 또는 민관 협업이 부족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오지현기자 ohjh@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