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건설사고 줄이는 근본적 처방

안홍섭 한국건설안전학회장 군산대 교수


대부분의 사고 예방대책이 효과를 거두는 데는 시간이 필요한 측면도 있지만 최근 발생한 이천의 물류창고 화재사고는 기존 건설사고 예방 제도와 정책에 대한 심도 있는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주시하다시피 유기단열재인 우레탄에 기인한 사고는 지난 2008년에도 있었으며 유사한 화재사고는 계속 발생했기 때문이다. 필자도 40여 년간 건설사고 예방을 위한 연구를 수행해오면서 건설사고 예방대책을 간결하게 제시하기가 아주 어렵다는 것을 실감해왔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 처방이 될 수밖에 없음을 전제로 일부나마 필자의 견해를 피력하고자 한다.

‘문제가 발생했던 당시의 사고방식으로는 중요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아인슈타인의 지적처럼 기존 대책의 한계와 이러한 한계를 남길 수밖에 없었던 문제 해결의 접근 방법부터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반복되는 대책에도 불구하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근본원인은 접근 방법에 문제가 있으며, 나아가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과 소속된 조직의 한계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정부가 시행한 주요 건설사고 예방대책을 보면 2017년 7월 ‘산업안전보건강조주간’에 국정 수반이 처음으로 건설업에서 발주자의 안전 책무를 천명해 패러다임의 전환을 주문했다. 이에 따라 ‘관계부처 합동 중대산업재해 예방대책’ ‘타워크레인 중대재해 예방대책’ ‘산업재해 사망사고 감소대책’ ‘공공기관 작업장 안전강화대책’ ‘건설현장 추락사고 방지대책’ 등이 추진됐으며 최근에는 ‘건설공사 안전혁신방안’까지 발표됐다.


‘건설공사 혁신방안’은 기존 대책의 사각지대인 민간 소규모 현장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의사결정권한을 행사하는 발주자와 경영진에 주목했다는 점, 이행력이 부족한 복잡한 법령과 제도 개선을 위한 건설안전특별법 제정 등 이제까지 중요하지만 간과돼온 요인들에 대한 대책이 마련되고 있다는 점에서 진일보한 것으로 생각된다.

정부의 ‘국민생명 지키기 3대 프로젝트’는 지난 30여 년 간 500명 이상을 웃돌던 건설업 사고사망자 수를 지난해 428명으로 줄임으로써 처음으로 400명대에 진입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이 숫자도 전체 산업 사고사망자 수(855명)의 절반이나 된다. 건설업 사고사망자 수로 보면 일반산업보다 열 배 정도 높고 실제 노동자 수를 반영하면 영국의 25배 수준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이천 화재사고는 건설사고 예방에 더욱 근본적인 대책을 주문하고 있다.

건설사고를 줄이지 못한 근원은 기존 대규모 공사 대상의 원청사 중심 대책에서 모든 건설사업을 대상으로 한 발주자 주도의 안전대책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근 건설업에는 부적합한 제조업 방식의 안전관리 제도가 관행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건설산업진흥법과 산업안전보건법 등에도 아직 선진국형 패러다임이 구현되지 못하고 있다.

효과적인 사고 예방을 위해서는 건설사업 참여자에게 의사결정권한에 비례하는 합리적인 안전 책무를 부여함과 동시에 이에 필요한 여건을 제공해야 한다. 권한 행사에 따른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는 데 필요한 여건 제공이 똑같이 중요하다. 이 여건에는 역량 있는 실무자를 필요한 만큼 동원할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모든 사고의 근본원인은 소요비용의 부족·오용으로 필요한 자원이 제대로 조달되지 못했기 때문이며, 비용이 수반되지 못하는 대책은 필연적으로 구두선이 될 수밖에 없다.

이천 사고에서도 현장관리에 필요한 역량이 제대로 조달되지 못했으며 다수 공종의 동시 작업에도 이를 관리·조정할 수 있는 전문가가 배치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관리상 결함’은 발주자의 공사비·공사기간을 조건으로 한 시공자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사안으로 공사현장의 안전 수준은 설계자와 시공자 선정 단계에서 결정되는데도 기존 대책은 도급계약 이후의 공사 단계 위주였다. 따라서 건설사고의 효과적 예방을 위해서는 발주자의 주도적 역할이 필수적이다. 관건은 영국의 사례와 같이 건설 사업에 문외한인 대다수의 발주자가 자신의 안전 책무를 인지하고 이행할 수 있는 장치를 제도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이천 사고가 국민의 복지 창출이라는 건설 산업 본연의 사명 달성 이전에 건설 산업의 불합리한 관행을 합리적으로 바꿔 산업 종사자부터 ‘위험으로부터의 자유’라는 기본권이자 복지가 확실하게 보장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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