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포럼 2020 Live] 코로나가 쏘아올린 공…"3~5년내 인류 미래 바꾼다"

'바이러스 헌터' 네이선 울프 메타바이오타 창립자 기조연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바이러스는 아니지만, 지금의 상황이 평균 50년 혹은 그 이상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그런 종류의 사건인 것은 분명합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코로나19를 통해 전 세계가 전염병의 위험성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미래에 또다시 발생할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대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 겁니다. 앞으로 3~5년 동안 세계가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인류의 미래는 바뀌게 될 것입니다.”

"유행병·팬데믹은 정기적으로 발생할것"
세계적인 바이러스 학자이면서 전염병 분석 기업 메타바이오타 창립자이자 이사회 의장인 네이선 울프(사진)가 30일부터 7월1일까지 이틀간 ‘포스트 코로나 국가생존전략:과학기술 초격차가 답이다’를 주제로 서울 광장동 그랜드&비스타워커힐 서울에서 열릴 ‘서울포럼 2020’ 개막 기조강연자로 나선다. 그는 최근 서울경제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이후에도 유행병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은 정기적으로 발생할 것이며 기업과 정부가 전염병 리스크에 상시 대응하는 체제가 일반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20 서울포럼 네이선 울프 메타바이오타 창립자./이호재기자

울프 의장은 코로나19를 ‘팬데믹의 분수령이 될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9·11 테러, 소니 해킹에 의한 사이버 위협 등과 같은 사건들이 테러리즘에 대해 광범위한 인식을 갖게 했다면 코로나19 이후 전 세계 정부와 주주, 금융기관 및 신용평가기관은 기업이 전염병 위험에 노출될 경우의 대응 계획과 기업휴지보험(재난이나 사고로 인한 휴업 손실을 보장하는 보험) 등을 요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방역복을 입은 의료진이 코로나 검체 검수를 하고 있다.

특히 그는 코로나19가 막 시작하는 단계일 뿐이라고 경고했다. 울프는 “많은 국가에서 팬데믹은 시작됐을 뿐이며, 특히 건강관리 시스템과 팬데믹 대비에 격차가 존재하는 지역에서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다”며 “미국에서는 여름 내내 장기적인 완화와 사회적 거리두기(정부 의지와 개인 선택의 조합)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울프는 또 “나는 팬데믹에 대한 회복력을 크게 세 가지 일반적 영역으로 나눠 생각한다. 즉 정부의 대비, 민간 부문의 대비, 개인적 대비다. 코로나19는 세 범주 모두에서 세계가 대비를 갖추지 못했음을 보여줬다”고 평했다. 이어 “국제적 협력에서 일부 성공한 사례가 있었지만 한참 미흡하다”며 “팬데믹은 반드시 국가 간 전파가 일어나므로 진정한 국제협력을 수반하지 않는 시스템은 반쪽짜리”라고 지적했다.

그의 분석처럼 현재 코로나19는 전 세계에서 폭발적으로 확산하고 있다. 국제협력 없이 한 국가의 노력으로 전염병을 막을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사태의 엄중함에도 불구하고 울프는 현 상황을 희망적으로 보고 있다. 그는 “코로나19가 더 많은 국가들이 전염병과 관련한 국제협력에 관심을 갖게 했다”며 “현재 글로벌보건안보구상(Global Health Security Agenda·GHSA)에는 67개국이 가입해 있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국가들이 GHSA에 가입하고 전염병 예방을 위한 자금 지원에도 적극적으로 나서리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몇 년 안에 '유행병 보험' 표준될것"
울프 의장은 기업에 사이버 위협이 최고정보보안책임자(CISO)를 만들어냈다면 코로나19도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새로운 위기에 대한 매뉴얼을 만들게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기업별로 구체적인 위험 평가와 팬데믹 발생 시 대응 매뉴얼 수립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앞으로 몇 년 안에 유행병에 대한 보험이 표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울프 의장은 “전염병 위험을 완화·관리하기 위해서는 기업은 강력한 데이터와 분석 도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9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의료종사자들이 공공의료체계의 개선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그가 말하는 국제적인 협력, 정부의 대응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그는 저서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에서 백신을 확보하고 치료약을 개발하며 행동방식을 수정하는 정도로 팬데믹에 대응해서는 안 되며 그 이상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가 외치는 ‘그 이상의 대책’이란 확산하기 전에 바이러스를 미리 발견하고 대응방안을 마련하는 것, 즉 팬데믹의 예측이다. 울프가 연구실을 떠나 세계 각국의 오지를 돌며 바이러스를 수집하고 다녔던 이유이자 2008년 그가 설립한 메타바이오타의 목표이기도 하다. 전 세계적인 전염병 모니터링 네트워크를 구축해 발 빠르게 정보를 공유하고 한발 앞서 대응하는 것이다.


울프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기초감염재생산지수(R0) 및 치명률(CFR)과 같은 중요한 개념을 팬데믹 이전보다 더 많이 이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코로나19는 개인의 위험판단능력을 향상시켰다”며 “사회적 거리두기와 개인보호장비(PPE)가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도 알게 됐다”고 평했다. 이어 “예측하기 어렵고 대응하기는 더 어려웠던 허리케인을 예로 들어보면 허리케인에 대한 보도는 수십 년 동안 극적으로 개선됐고 국가와 개인의 대응도 더욱 체계화됐다”며 “나는 전염병에 관한 저널리즘이 개선돼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개인과 정부·언론이 서로 신뢰관계를 맺고 전염병에 대응할 때 우리는 새로운 팬데믹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울프, 종신 교수직 버리고 '바이러스 헌터'로
21세기에도 우리는 치명적인 질병이 도대체 어디에서 시작됐고 어떻게 퍼졌는지 모른다. 과학과 문명이 아무리 발달했어도 바이러스만큼은 여전히 정복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인 탓이다. 네이선 울프는 그 암흑의 영역을 가시화하기 위해 전 세계를 무대로 연구를 펼치는 바이러스 학자다.

울프에게는 바이러스 학자보다 ‘바이러스 헌터’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 바이러스 연구를 위해 미국 유명 대학인 UCLA의 종신 교수직을 버리고 중앙아프리카의 열대우림과 사냥터, 동남아시아의 야생동물 시장까지 세계 전역을 돌며 잠재적 파괴력을 지닌 바이러스의 기원과 전염 요인을 분석했다. 그의 이런 모습을 두고 학계에서는 ‘행동파 연구자’로 부른다.

네이선 울프(왼쪽)가 아프리카 열대우림에서 동물 개체 등을 확인하고 있다./사진제공=메타바이오타

울프의 꿈이 원래부터 바이러스 학자였던 것은 아니다. 울프는 하버드대 대학원에 진학해 원시 학자가 될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난 1990년대 우간다에서 침팬지를 연구하면서 동물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퍼지는 방식에 매료돼 면역학 및 전염병으로 연구 방향을 바꿨다. 연구를 위해서는 아프리카·동남아 등 새로운 바이러스가 자주 발견되는 곳으로 가야 했다. 울프는 이들 지역에서 야생동물을 사냥하는 사냥꾼들을 만나며 그들이 사냥하는 동물의 혈액 샘플을 채취하고 사냥꾼들의 건강상태를 모니터링하면서 신종 바이러스가 어떻게 인간에게 전염되고 세계로 퍼져나가는지 연구했다. 특히 그가 10년 가까이 매달린 카메룬 사냥꾼 연구에서는 7,000개의 샘플을 수집하는 성과를 냈다. 이 외에도 울프의 연구팀은 중국과 말레이시아, 콩고, 라오스 및 마다가스카르에서 이러한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한 바 있다.

울프는 바이러스의 발생 순간을 포착하고 그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창립한 것이 전염병의 조기 발견과 억제를 막는 비영리 연구소인 ‘글로벌 바이러스 예보(Global Viral)’다. 세계 곳곳에 질병 모니터링 네트워크를 구축해 향후 인류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바이러스 데이터를 만들고 이에 대응하는 것이 목표다. 울프는 2008년 전염병 위험관리 솔루션 기업인 메타바이오타를 창립해 바이러스 연구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예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울프는 스탠퍼드대 인간생물학과 초빙교수이며 스탠퍼드대에서 학사 학위를, 하버드대에서 면역학과 감염증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풀브라이트 장학금 수혜자로 뽑혔으며 2005년에는 권위 있는 미국 국립보건원 원장 선구자상을 수상했다. 또한 세계경제포럼에서 젊은 글로벌 리더로,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는 떠오르는 탐험가로 선정됐다. 2011년에는 타임지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뽑혔다. 국내에 소개된 저서로는 ‘바이러스 폭풍의 시대’가 있다.

울프가 세운 전염병 데이터뱅크 '메타바이오타'
메타바이오타는 전염병 데이터 뱅크라고 불린다. 수백 개의 데이터 소스에서 지역 수준으로 관리·수집 및 구조화하는 작업을 진행하며 총 2,400개 이상의 과거 전염병 발생 사례와 400개 이상의 데이터 소스를 구조화한 자료를 보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구축한 유행병 모델은 세계적인 규모로 작동하며 질병이 어떻게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장소에서 장소로 퍼지는지를 추정한다. 또한 이동통제 등 각종 시나리오에 따른 전염병 영향을 예측하는 서비스도 선보이고 있다.


메타바이오타의 이사회 의장인 네이선 울프는 이러한 예측이 더욱 정확해지기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국제적 협력과 정보 공유가 반드시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전염병 네트워크 구축이 세계 각국 정부의 과제라면 다음과 같은 민간과 개인의 역할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울프는 “민간 영역에서 기업은 전염병을 이해하고 공급망 붕괴에 대비한 비상계획과 같은 보험 및 완화 전략에 투자해야 한다. 개인적 차원에서 위험판단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 중에서도 개인의 위험판단능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위험판단능력이란 간단하게 설명하면 대중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대한 정보를 이해하고 적합하게 해석할 수 있게 만들자는 개념이다. 팬데믹 예방을 위해서는 대중의 위험판단능력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박윤선기자 sepys@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