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우크라이나 반정부 시위 당시 과녁판으로 희화화 된 빅토르 야누코비치 전 대통령의 사진./AP연합뉴스
실제 존재하는 공간이 아닌 가상의 개념에 불과하지만 세계 경제와 정치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대하다. 어마어마한 돈이 해마다 이곳으로 흘러 들어간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돈 좀 셀 줄 아는’ 금융·법률 전문가들이 슬쩍 가늠해보기만 해도 매년 수백억 달러씩 유입 자금이 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이름도 이곳에서 종종 회자 된다. 중동이나 중국, 남미 등지의 부호는 말할 것도 없다. 온 세상 탈세 부자와 부패 정치인을 미소 짓게 하는 나라, 바로 ‘머니랜드’다.
머니랜드는 영국 탐사 언론인 올리버 벌로의 책 제목이다. 그는 야비하고 더러운 돈이 너무나 쉽게 세탁되는 이 곳을 머니랜드라고 명명했다. 이미 익히 알려진 세계 각지의 조세 회피처, 역외 금융의 천국들이 모두 머니랜드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서 좀 더 깊숙이 들어간다. 단순히 리히텐슈타인 공국이나 카리브 해의 파나마, 말레이시아 리부안, 미국 델라웨어주 등을 지리적으로 한정해 머니랜드라고 지목하는 데 머무르지 않는다. 개발 도상국 권력자들의 탐욕과 영국·미국·스위스 등지의 금융·법률가의 모략, 작은 나라들의 황당한 법·제도가 하나의 시스템으로서 일사불란하게 작용하면서 세상을 어떻게 좀 먹고 있는지 여러 사례를 통해 실체를 파헤친다. 머니랜드가 번성할수록 세계 각지의 민주주의는 약화하고 불평등은 심화한다. 범죄자는 점점 뻔뻔하게 부와 행복을 누리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날로 피폐해진다고 저자는 비판한다.
야비한 돈, 국경 넘나들며 세상 망친다 |
우크라이나의 부패는 지난해 뮐러 특검 등을 통해 드러났듯이 미국 정치판과도 연결고리를 갖는다. 우크라이나의 야비하고 더러운 돈은 머니랜드 시스템을 통해 런던의 고가 부동산이나 사치품으로 둔갑한 후 워싱턴으로 흘러갔다. 그러는 동안 우크라이나 국민은 자포자기했다. 세금을 내야 할 부자들은 내지 않고, 세금 낼 형편이 안되는 사람들이 나라 곳간을 채웠다. 노점상 할머니조차 경찰에 돈을 쥐어 주고 뒷배를 얻는 걸 당연하게 여겼다.
이는 우크라이나에 한정된 문제가 아니다. ‘자유’를 주장하는 선진국 금융·법률·제도가들의 방탕한 돈 놀음은 단순한 조세 회피에서 시작해 이제는 글로벌 부패 시스템이 돼 버렸다. 역외 금융은 처음에는 단순히 세금이나 이혼 위자료를 덜 내려는 사람들의 돈을 굴려 돈을 벌어보겠다는 런던 금융가의 아이디어였을 뿐이다. 하지만 이들의 발상을 이용하려는 돈이 점점 늘고, 갈수록 수법이 진화했다. 아프리카, 남미 등지의 도둑 정치가들은 자국에서 훔친 돈을 선진국의 최상급 은행가, 변호사, 회계사, 로비스트를 통해 떳떳한 돈으로 세탁한 후 사치 소비를 하고 있다. 아프리카 2위 산유국 앙골라의 경우 전체 국민 3분의 2가 하루 2달러 미만으로 사는데도 부통령 보르니투 드 소우자의 딸은 뉴욕 웨딩숍에서 20만 달러짜리 드레스를 골랐다. 또 부자들은 법을 피해 돈을 자식에게 물려주기 위해 세인트키츠네비스 같은 나라에서 시민권을 사거나 후진국의 외교관 신분증을 발급받는 식으로 조세를 회피한다. 중국 공산당 간부들은 우회 상속을 위해 일본에서 대리모 출산을 하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이대로 두면 다 같이 망한다 |
/정영현기자 yhchu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