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코로나 대응 포기, 美 아닌 공화당이 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공화당이 장악한 '레드스테이트'
경제봉쇄 해제에 확진자 치솟아
민주당 지지자 예방수칙 더 잘지켜
당파적 분열로 반쪽짜리 대응

폴 크루그먼

올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의 전쟁으로 많은 미국인이 고초를 겪었다. 지금까지 집계된 사망자만 12만명, 사라진 일자리도 2,000만개를 웃돈다.

하지만 그 모든 희생은 허사가 돼버렸다. 값비싼 대가를 지불했음에도 우리는 코로나19 통제에 실패했다.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의 국내 진원지였던 뉴욕의 감염 건수는 크게 떨어졌지만 나머지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급속한 확산세가 이어지고 있다.

꼭 이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양한 국가들이 오밀조밀 모인 방대한 지역에 미합중국보다 더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유럽연합(EU)은 미국에 비해 훨씬 효과적으로 코로나19 확산세를 막는 데 성공했다. 우리의 실착은 무엇일까.

여러 주의 지도자들이 보건전문가들의 경고를 무시한 채 서둘러 경제봉쇄를 해제했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마스크 착용과 대규모 집회 기피 같은 기본적인 예방수칙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즉답이 될 수 있다. 이런 집단적 어리석음은 도대체 어디서 나온 걸까.

미국인들은 성격이 조급해 진득하게 제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공공의 선을 위한 개인의 책임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문제의 본질을 비껴간 것이다. 미국인들은 코로나19 대응에 실패하지 않았다. 실패는 공화당이 했다.

민주당계 주지사들이 다수인 북동부 지역은 경제활동 재개에 신중을 기했고 결과적으로 지역 내 확진자 수는 유럽 감염자 수와 거의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애리조나·플로리다와 텍사스 등 공화당이 장악한 ‘레드스테이트’다. 이들은 서둘러 경제봉쇄를 해제했다. 확진자 수가 치솟자 추가 해제조치를 유보하기는 했지만 완전 번복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물론 공화당 주지사들과 주 의회만의 잘못은 아니다. 뉴욕타임스(NYT)와 시에나의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유권자들은 경제봉쇄 해제보다 코로나19 억제에 우선순위를 두기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백악관과 폭스뉴스를 통해 행동지침의 실마리를 찾는 공화당 유권자들은 정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책 결정의 문제만도 아니다. 당파성 역시 개인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자칭 민주당 지지자들은 공화당 유권자들보다 마스크 착용과 거리두기 같은 코로나 예방수칙을 더 잘 지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올바른 질문은 왜 ‘미국’이 팬데믹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느냐가 아니라 공화당이 코로나19와 연합한 이유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우선 근시안적인 단기 정책이 부분적 대답이 될 수 있다. 올해 초 도널드 트럼프의 재선 메시지는 ‘경제 승리주의’ 일색이었다. 낮은 실업률과 주가상승 등 호의적인 경제지표를 등에 업고 11월 대선에서 무난히 재선 고지에 오른다는 전략이다. 트럼프와 행정부 관리들은 바이러스의 위협을 인정하지 않은 채 코로나19의 초반 기세를 꺾는 데 필수적인 몇 주를 허비했다. 이유는 뻔하다. 재선 전략에 영향을 미칠 불길한 소식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공화당이 코로나19를 부정하는 것이 트럼프와 그의 재선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핵심 포인트는 코로나19와 기후변화의 유사성이다. 기후변화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역시 공화당이 인정하고 싶지 않은 종류의 위협이다.

우파가 공포 조장을 싫어한다는 뜻이 아니다. 공화당은 마스크 착용처럼 불편을 초래하는 조치를 요구하는 위협에 유권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따라서 공화당 지도자들과 우파 언론은 이를 그들이 말하고 싶어하는 다른 종류의 위협으로 바꾼다. 이들은 코로나19를 중국과 트럼프에게 타격을 주려는 ‘의료계의 불순세력’이 만들어낸 허구라는 해석도 내민다.

다행히 바이러스를 부인하는 정치적 술수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과거와 달리 인종주의 카드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 부분적 이유다.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고 외치는 시위자들은 그들을 폭도로 규정하려는 일부 뻔한 정치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광범위한 대중의 지지를 얻고 있다.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공화당 주지사들은 구체적인 행동에 나서지는 않지만 정부와 집권당의 대응법에 문제가 있음을 시인한다.

반면 나쁜 소식은 심각한 당파적 분열로 우리의 코로나19 대응이 절름발이가 됐다는 점이다. 바이러스의 위세가 여전한 상황에서 모든 증거는 앞으로 한두달이 코로나19의 만연과 경제교란이라는 무시무시한 악몽이 판치는 공포의 시간이 될 것임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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