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연합뉴스
사상 최악의 장기미제사건으로 남아 있던 경기도 화성 일대 연쇄살인 사건 용의자인 이춘재(57)에 대한 경찰의 재수사가 첫 살인 사건 발생 34년 만에 마무리됐다. 경찰은 이씨가 14명의 여성을 살해하고 다른 9명의 여성을 성폭행한 것으로 최종 결론 냈다.
경기남부경찰청은 2일 이 같은 내용의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 종합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은 지난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당시 경기도 화성군 일대에서 10~70대 여성 10명이 잇따라 살해당한 사건이다. 30년간 베일에 가려졌던 사건은 지난해 7월 당시 사건 현장의 증거물에서 검출된 DNA가 처제 살해 혐의로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던 이씨의 DNA와 일치하는 것으로 나타나 재수사가 시작됐다.
이씨는 그동안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알려진 10건의 살인사건을 모두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또 1989년 7월 화성 초등학생 실종사건 등 4건의 살인사건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씨는 프로파일러들과 지난해 9월 부산교도소에서 네 번째 면담을 갖던 중 살인 범행 사실 전체를 자백했다. 이씨는 살인 외에도 34건의 성폭행 또는 강도 범행을 저질렀다고 털어놓았다. 다만 경찰은 입증 자료가 충분한 9건의 사건만 이씨의 소행으로 결론을 냈다.
배용주 경기남부청장이 2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남부지방경찰청에서 이춘재 연쇄살인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경찰은 이씨가 어린 시절 억눌렸던 자아가 풀리면서 나타난 성적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위해 범행을 시작했다고 봤다. 범죄가 반복되면서 점차 잔혹하고 가학적인 사이코패스형 범죄자로 바뀌었다고 분석했다. 경찰 관계자는 “어린 시절 동생이 물에 빠져 죽은 충격으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았다가 군 복무기간 큰 우월감을 맛본 것으로 보인다”며 “전역 이후 무료하고 단조로운 생활을 보내던 중 욕구 해소를 위해 성폭행을 시도하다 살인을 시작했고 이후 점점 더 가학적인 성욕을 갖게 되면서 연쇄살인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사이코패스 성향도 뚜렷했다. 이씨는 수사 과정에서 범행 원인을 피해자에게 전가했고 그들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50여차례의 대면 조사에서도 범행 동기가 무엇이냐는 직접적인 질문에는 끝내 침묵했다.
이씨에 대한 처벌은 공소시효가 지나 불가능하다. 이씨가 마지막으로 저지른 살인사건의 시신이 발견된 날은 1991년 4월3일이다. 이미 15년이 2006년 4월2일을 기해 살인죄 공소시효가 만료됐다. 살인죄 공소시효는 2015년 폐지됐지만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은 법 제정 전에 공소시효가 끝나 이 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에 따라 검찰로 넘겨진 이씨는 ‘공소권 없음’으로 처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씨가 저지른 8차 사건과 초등생 김모양 살해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당시 경찰관들도 직권남용·사체은닉 등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되지만 역시 공소시효 만료로 처벌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동훈기자 hoon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