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가 만병통치약이다

<나는 퇴직이 두렵지 않다> 저자 지철원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구위원이 말하는 퇴직 후 일자리 효과
은퇴 대비 수준 낮아…일찍 시작하는 연금저축으로 노후 안전판 마련해야

퇴직 후에도 일을 해야 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우리는 오래 산다. 현행 법정 퇴직연령은 60세(명목상은 그렇다). 퇴직 후 (길게는) 수 십 년을 더 살아야 하는 우리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일자리를 통한 소득원 확보가 절실하다.


일자리는 시간을 슬기롭게 보내는 법이기도 하다. 퇴직 후 불현듯 찾아오는 ‘금단현상’들이 있다. 현금흐름(월급)이 끊기고 가야 할 곳이 사라지고 연락이 두절된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실종되고 급기야 삶의 보람이 사라진다.


<나는 퇴직이 두렵지 않다>를 쓴 지철원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구위원은 퇴직자들에게 일자리는 만병통치약이라고 말한다. 예기치 못한 퇴직이 야기하는 공황과도 같은 사태에 일자리야말로 이 모든 금단을 해결할 수 있는 치유법이라는 것이다.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이날 인터뷰는 서울특별시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트러스톤자산운용 본사에서 진행됐다.




지철원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금포럼 연구위원


-자기소개 부탁 드린다.


“트러스톤자산운용에서 연금포럼을 담당하고 있다. 공대(연세대)를 나와 반도체 회사에서 일했고 이후 38세에 금융회사로 이직해 지금까지 이 일을 하고 있다. 전직이 늦어서 일을 빨리 배울 수 있었다. 금융업 종사자로 변신한 것은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책 저자이기도 한데.


“<나는 퇴직이 두렵지 않다>란 책을 강창희 대표, 송아름 연금포럼 연구원과 함께 썼다. 연령이 각기 다른 공저자들이 자기가 속한 세대의 눈으로 퇴직을 다뤘다. 최근에는 ,파이낸셜 프리덤.이란 책의 감수를 맡았다.”







-책 제목이 독자들의 흥미를 잡아챘을 것 같다. 책은 많이 팔렸나.


“(웃음) 생각보다 많은 돈을 벌지는 않았다.”



-(웃음) 쓸 데 없는 질문해서 죄송하고, ‘퇴직’이란 키워드를 놓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해보자. 퇴직자 혹은 퇴직 예정자들을 많이 만나실 것 같은데 위원님이 평가하는 그들의 퇴직예비 정도는 어떠한가.


“약 10% 정도만이 합격점을 받을 수 있을 듯 하다. 공무원, 선생님, 군인, 이런 분들의 퇴직준비가 잘 돼 있다. 나머지 직군들 중에선 노후빈곤율이 매우 높게 나타난다.”



-이름만 다를 뿐이지 모두 공무원 직군인데, 그래서 공무원, 공무원 하는 건가. 이유는 무엇인가.


“대기업 다니시는 분들이 공무원보다는 소득이 확실히 높다. 그런데 소득이 많을수록 생활비 수준도 높다. 소비수준을 조절하지 않는 한 돈은 모이지 않는다. 공무원들은 연금제도를 통해 퇴직 이후를 자연스럽게 대비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깐 책에서 유독 절약을 많이 강조하던데.


“돈을 버는 건 마음대로 안되지만 아끼는 것은 마음 먹은 대로 할 수 있으니까. 자산을 쌓는 것은 자신이 콘트롤할 수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절약은 자산증식의 효율적인 습관이다.”






-절약 좋지. 그런데 돈은 돈 스스로 일하게 만들 때 돈으로서의 최대 가치를 입증하게 되는 법인데 지금처럼 저금리 환경에서는 절약이 큰 의미가 있을까.


“돈은 뭉쳐 있을 때 효과가 커진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직장인들은 목돈을 만들 수가 없다. 적립식으로 장기투자가 필요한 이유다. 적립식으로 오랜 기간 투자하면 충분한 종잣돈을 바탕으로 5% 이상의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면 일찍 시작할 수록 효과적이겠네?


“그렇다. 적립식 투자는 일찍 시작하는 것이 정답이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다. 나이가 어릴수록 적립식 투자를 멀리 한다. 어떻게 하면 젊은 직장인들을 이쪽 세계(장기적립식)로 유인할 수 있을지 여전히 고민 중이다.”



-젊은 사람들은 왜 마다하는 걸까.


“그건 본능이다. 당신이 젊었을 때를 생각해보라. 젊을 때는 누구나 부자가 되겠다는 꿈을 꾼다. 펀드로 연간 10%의 수익률을 냈다면 그건 엄청난 것인데 ‘그까짓 10%’라고 낮잡아보는 게 젊음의 특징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라. 지금 우리는 제로금리 시대에 살고 있다. 10% 수익률은 정말이지 너무 훌륭한 거다.”







-얼마 전 라이프점프가 하나금융이 발족한 100년행복연구센터를 취재한 적이 있다. 조용준 센터장은 인터뷰 내내 투자의 발상을 바꾸라면서 조기연금가입을 강조하더라. 비슷한 맥락 같다.


“미국의 경우 펀드에서 퇴직연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약 53%에 달한다. 쉽게 말해 펀드시장을 좌지우지 하는 것이 퇴직연금이란 소리다.


퇴직금만으로 인생 후반을 준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퇴직금이란 것이 1년에 한달 치 정도 월급을 쌓는 거다. 30년 일하면 30개월 치밖에 안 되는 거지. 과연 이 돈으로 여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런데 수익률이 높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본시장에 돈이 들어가는 게 물론 위험하긴 하다. 이걸 장기로 투자하면 리스크 헷지가 가능하다. 연간 수익률 5~6%를 기대하고 30년을 기다리면 5~6억원 가량의 목돈을 회수할 수 있다. 여기에 세제혜택도 있으니 직장인들의 노후생활 대비책으로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다.“



-결국 적립식 장기투자라는 것을 정리하면, 목돈을 단기간에 마련하기 어려운 직장인들이 적립을 통해 투자원금을 키우라는 것. 그리고 리스크를 묶어두되 기준금리 이상의 수익률을 기대하기 위해 장기로 운영하라는 것. 이렇게 정리할 수 있는 거네?


“그렇다. 나는 장기투자론자인데 주식시장의 장기그래프를 보면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다. 장기투자를 왜 하느냐. 산업 내 혁신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인간의 노력이 덧붙여지는 기업은 부가가치라는 것을 창출하고 시장은 이것에 힘 입어 우상향하게 돼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시장은 부침은 있었지만 스무스하게 우상향해 왔다.”






-위원께서는 몇 개의 펀드에 가입해 있나. 솔직하게 말씀해달라.


“궁금하지? 나의 대답은 굉장히 많은 펀드에 가입해 있다는 거다. 펀드마다 가입액수는 차이가 있지만 웬만한 펀드는 다 갖고 있다.


개인적으로 주식형펀드를 선호하는데 국내 주식형은 부담스러운 구간이어서 비중을 낮췄다. 선진국 주식형 펀드가 많고 헷지 차원에서 가입했던 원유펀드가 있는데 한동안 고전하다가 최근에 수익실현했다.“



-퇴직을 앞둔 4050 세대는 적립식 장기투자가 늦은 걸까?


“일단 40대는 늦지 않았다고 말씀 드리고 싶다. 30대는 자식들이 어리고 급여는 작고 돈 모으기가 쉽지 않지. 그런데 40대는 급여 수준이 정점에 오른 때여서 자본축적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


50대는 글쎄... 제 나이도 올해 51세인데 늦었다고 말하긴 그렇고. (하하) 다만 퇴직자금을 활용해서 창업을 하는 것보다는 연평균 수익률 5~6%를 노리고 자본을 굴리는 것이 좀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연평균 수익률 20~30% 같은 허황 된 꿈 말고 은행이자보다는 더 높은 수익을 얻겠다, 란 생각으로 스스로를 트레이닝 하는 것이 리스크를 낮추는 법이다. 꾸준히 일을 하면서 자본이득까지 내면 금상첨화라는 생각 말이다.“



-최근 들어 자녀 교육에 돈을 써야 하는지, 퇴직 준비자금으로 활용해야 하는지를 놓고 ‘자녀 리스크’란 말이 회자 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 전 세계에서 근면하기 소문났다. 그런데 노후 빈곤율은 매우 높다. 자녀한테 다 빼앗긴 결과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 마음은 전 세계 어디나 다 비슷하다. 다만 미국, 유럽 등은 좀 더 계산적이라는 것이 차이다. 자녀와 부모는 독립 채산이 맞는 것 같다. 자녀에게 너무 투자하지 말고 노후대비를 좀 더 체계적으로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창업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퇴직 후 창업은 어떻다고 보시는지.


“직장인들에게 금융상품 투자를 권유할 때도 하이 리스크 상품은 웬만하면 피한다. 금융상품 중에서 하이 리스크로 꼽히는 것이 주식형 펀드인데 이 정도 상품도 자신 있게 권유하지를 못하잖나. 하물며 그보다 더 리스크가 큰 창업을 권한다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럽다. 식당 창업보다는 자본을 굴리는 방법을 연습하는 게 훨씬 리스크가 적다.


대학 졸업 후 각기 다른 이유로 창업하는 젊은 분들이 있다. 그 분들은 오랜 시간 사업하면서 잔뼈가 굵고 나중에 계속 사업을 영위할 수 있겠지. 그런데 평생 근로소득자로 회사생활만 한 이들에게 창업은 위험한 선택일 수 있다.“






-결국 안정적 노후를 준비하지 못한 퇴직자들에겐 퇴직 후에도 지속할 수 있는 일자리가 답일 것 같다.


“국민연금 많이 받아봐야 한 달에 100만원 가량이다. 연금은 최저생활비 정도로 봐야 한다. 보다 안정적 삶을 위해선 그 이상이 필요하다.


퇴직자들을 보면 일자리 욕구가 굉장히 강하다. 일자리 욕구는 나이와 관련 없다. 연금을 어느 정도 갖춘 이들도 일자리를 원한다. 일자리를 단순히 소득원 마련의 관점에서 보기 어려운 이유다. 일자리는 소득원, 관계, 건강, 자아실현, 보람, 여가활용 등 모든 것들과 맞닿아 있다. 그런 점에서 일자리는 퇴직자들에겐 만병통치약에 가깝다.“



-문제는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를 얻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나는 퇴직이 두렵지 않다>를 보면 액티브 시니어들이 다수 등장한다. 이들의 특징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내려 놓기’다. 일자리의 질, 그 일을 통해 얻는 기대소득, 사회에서 구축해놓은 체면 등 이 모든 것들을 내려 놓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더라. 눈높이를 낮추라는 거다.


퇴직자들의 일자리 구축을 위한 딱 맞는 해법은 없다. 다만 젊은 사람들이 하기엔 어려운 일에서 답을 찾아보는 건 어떨까. 가령 NPO(Non Profit Occupation) 같은 곳에서 일의 보람을 찾는 거다.


인간은 인정 받지 못하면 못 견딘다, 라는 말이 있다. 사회로부터, 타인으로부터 인정 받는 길이 반드시 고액연봉의 일자리만은 아닐 것이다. 보람을 얻을 수 있는 일자리에서 적정 수준의 소득을 얻는 길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박해욱 기자 서민우 기자 spooky@lifejump.co.kr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