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탈레반에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살해를 사주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해당 내용을 보고받았다는 의혹이 제2의 ‘러시아 스캔들’로 확산되면서 ‘대통령의 해결사(fixer)’로 불리는 변호사들에게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위기의 순간 트럼프 대통령을 방어하고 그를 벼랑 끝에서 구해내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이들이 재차 조력자로 나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최근 가장 주목되는 이는 윌리엄 바 법무장관이다. 그는 지난 1991~1993년 조지 H W 부시 정권에서 법무장관을 지낸 연륜과 최대 7,400만달러(약 888억원)로 추정되는 거액의 재산을 가진 트럼프 대통령의 사실상 개인변호사이자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하고 있다. 그의 존재감은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에서 두드러졌다. 바 장관은 대통령이 지나갈 길을 내기 위해 최루탄으로 시위대를 해산한 것을 두고 “내가 지시했다”고 말해 대통령에게로 향하는 비판을 뒤집어썼다. 또 “폭동에 대응하는 것이 나의 분명한 관심사”라며 최루탄 사용을 정당화했다. 대통령이 시위대의 배후에 극좌파단체 ‘안티파’가 있다고 주장하자 바 장관은 실제로 시위대가 선동가들에게 ‘납치된’ 증거가 있다며 앞장서 대통령을 두둔하기도 했다.
바 장관은 대통령의 최측근을 강도 높게 수사한 제프리 버먼 뉴욕 남부연방검사장을 해임하는 데도 앞장섰다. 그는 “절대 그만둘 일이 없다”는 버먼 전 검사장에게 “내가 대통령에게 (당신의) 해임을 요청했으며 대통령이 받아들였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해당 사안은) 법무장관의 소관으로 나는 관여하지 않는다”며 바 장관의 손을 들어줬다. 5월에는 러시아 스캔들 관련 위증 혐의를 스스로 인정한 마이클 플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에 대한 기소를 직접 취하하고 불법 로비와 돈세탁 혐의로 복역 중인 폴 매너포트 전 트럼프대선캠프 선거대책본부장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한 우려로 석방해 특혜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루돌프 줄리아니 변호사도 트럼프 대통령의 우직한 충신 중 한 명이다. 대통령의 개인변호사인 그는 우크라이나 군사지원을 대가로 조 바이든 전 부통령 부자(父子)에 대한 의혹 수사를 압박하도록 조언했다. 지난해 7월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줄리아니를 보낼 테니 바이든 조사에 협력해달라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요청할 정도로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기도 하다.
줄리아니 변호사를 향한 트럼프 대통령의 애정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줄리아니가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해 (말라리아 약인) 히드록시클로로퀸이 코로나19 치료에 효과적이라고 얘기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클로로퀸을 예찬한 배후에는 줄리아니가 있다고 보도했다. 줄리아니 변호사는 “이 일로 돈을 벌 생각은 없다”고 말하며 해당 보도를 에둘러 인정했다.
하지만 우직한 충신 역할을 했던 이들도 언제든 마이클 코언 전 변호사처럼 180도 바뀔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언 전 변호사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 변호사로 지난 대선 막판에 대형 스캔들로 번질 뻔한 전직 포르노 배우와의 불륜설이 폭로되는 것을 막은 일등공신이다. 그러나 코언 전 변호사는 러시아 스캔들 수사의 칼날이 자신을 향하자 유죄를 인정하고 감형을 받는 플리바긴을 선택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거침없는 폭로를 이어갔다.
미 CNN방송은 코언 전 변호사를 언급하며 “트럼프의 충신들이 언제, 어떻게 돌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실제로 바 장관은 2월 “(대통령의) 일부 트윗으로 (업무상) 문제가 있다”며 이례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지난해 줄리아니 변호사가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자 트럼프 대통령은 “그와 얘기하고 있지 않다”고 말해 잠시나마 분열된 관계를 시사하기도 했다. /곽윤아기자 o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