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과 인도 ‘더와이어’ 등에 따르면 인도 카르나타카주 고등법원 크리슈나 S. 딕싯 판사는 이 같이 밝히며 지난달 22일 성폭행 혐의로 기소된 20대 남성의 보석을 허가했다. 딕싯 판사는 보석 결정문에서 “피해자가 성폭행을 당한 뒤 지쳐 쓰러져 잠들었다는 부분은 인도 여성답지 않다”며 “우리 인도 여성이 겁탈당했을 때 반응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피해자가 밤 11시 사무실에 가고, 피고인과 술을 마시길 거부하지 않고 아침까지 함께 있었던 이유 등이 설명되지 않는다”며 성폭행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듯한 모습도 보였다.
이 같은 딕싯 판사의 주장에 인도 여성들은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성폭행 피해자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정해놓은 규정집이 있느냐는 비판과 함께, 소셜미디어 상에는 과거 부적절했던 판결들을 모아놓은 ‘인도 판사들이 정한 이상적인 성폭행 생존자 가이드라인’이라는 제목의 이미지가 확산됐다. 이 이미지는 ‘만약 밖이라면 즉시 괴롭고 굴욕적이고 망연자실한 상태에서 서둘러 집에 돌아가라, 그렇지 않으면 일반적이지 않다’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델리의 한 변호사는 대법원장과 여성 대법관 3명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대응을 촉구했다. 그는 “내가 모르는 성폭행 피해자 행동규범이 법에 규정돼있느냐”며 “최악의 여성 혐오”라고 지적했다.
/트위터 캡쳐
인도에서는 이처럼 성폭행과 관련한 부적절한 판결이 수차례 발생했다. 지난 2017년에는 피해자가 맥주를 마시며 흡연하고 콘돔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피해자를 비난하는 판결이 있었다. 2016년에도 피해자의 행동이 ‘두드러지게 일반적이지 않았다’고 의문을 제기한 판결이 나왔다. 앞서 1979년에는 인도 대법원이 경찰서에서 10대 소녀를 강간한 경찰관들에게 무죄를 선고하며 “(피해자가) 경찰관들과 사귀면서 성관계를 맺어온 것으로 보이고 진단서상 부상이 없으므로 성폭행은 날조된 것”이라고 판시하기도 했다.
인도 범죄기록국(NCRB)에 따르면 2018년 한 해만 경찰에 기록된 강간사건만 3만3,977건으로, 15분당 1건씩 강간이 발생했다.
/김연하기자 yeon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