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마지막 전투 ‘425고지 전투’ 치열했던 그날[김정욱의 밀톡]

화천발전소 두고 국군-중공군 맞붙은 전투
425고지 전투 승리로 휴전선이 35㎞ 북상

강원도 화천군 칠성전망대에서 바라본 425고지(왼쪽)와 406고지(오른쪽) /화천=연합뉴스

6·25전쟁 발발 70주년을 맞은 올해는 정전협정 체결 67주년이기도 하다. 6월이 ‘전쟁 발발의 달’이라면 7월은 ‘정전협정의 달’이라고 할 수 있다.

정전협정의 달에 6·25전쟁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격전이 있다. 바로 6·25전쟁의 마지막 전투인 ‘425고지 전투’다.

425고지 전투는 6·25전쟁 막바지인 1953년 7월 20일부터 27일까지 국군 7사단 8연대 1개 대대가 중공군 135사단과 강원도 철원군 원남면 일대 425고지에서 벌인 전투다

화천발전소를 지키기 위해 치러진 425고지 전투는 6·25전쟁의 마지막 승전으로 기록됐으며, 이 전투의 승리로 인해 휴전선이 35㎞나 북상했다.

1953년 7월 휴전을 앞두고 북한의 김일성은 “화천발전소만은 넘겨줄 수 없다”며 탈환을 지시했다. 이승만 대통령 역시 “화천발전소는 반드시 지켜야 한다”며 절대사수 명령을 내리고 1953년 7월 19일 2군단 사령부를 직접 방문해 장병들을 격려했다.


강원도 철원군 원남면에 있는 425고지 전투 전적비. /사진제공=국방부

425고지전투는 국군 7사단이 화천으로 이동한 후 유일하게 수행한 마지막 전투다. 화천 북방 철책선 약 1.2㎞ 지점의 비무장지대에 위치한 425고지는 적에게 빼앗기면 아군의 방어선이 무너지는 요충지로서 중공군은 이곳을 점령하기 위해 총공세를 펼쳤다.

중공군은 1953년 7월 20일부터 425고지를 계속 공격해왔다. 인해전술을 내세운 중공군의 공격에 아군은 백병전을 불사하며 싸웠고, 고지와 주저항선을 지켰다.

이 전투에서 7사단 8연대 1중대장 김한준 대위는 60㎜ 박격포를 이용해 중공군 950여명을 사살하고 화천발전소를 지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하지만 당시 아군 160명도 전사했다.

1개 중대 병력인 196명의 중대원으로 중공군 1개 대대를 섬멸하는 전공을 세운 김한준 대위는 휴전 후 이 대통령으로부터 태극무공훈장을 받았다.

425고지 전투는 국군이 승리했지만 정전협정 과정에서 군사분계선이 고지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게 됐다. 이로 인해 그날의 승리가 반쪽이 되고 말았다.

군 관계자는 “현재 425고지는 강원도 화천군 비무장지대에 위치하며 칠성전망대에서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면서 “지금은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 흔적은 사라지고 푸른 숲에 고라니와 멧돼지 등 야생동물들이 뛰놀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정욱기자 myk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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