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베르호얀스크


러시아의 시베리아 북동부 북극권에 있는 베르호얀스크는 ‘세계에서 가장 추운 도시’로 알려져 있다. 1892년 2월 섭씨 영하 67.8도까지 기온이 떨어지면서 붙여진 별칭이다. 수도 모스크바에서 4,800㎞ 떨어진 이 지역은 고기압이 주로 형성돼 구름 없이 쾌청한 날이 많다. 하늘로 열이 빠져나가는 방사냉각 현상이 나타나 기온이 급강하한다. 일찌감치 10월이면 겨울로 접어들어 이듬해 4월까지 혹독한 추위가 계속되는데 4월이 돼도 월 평균기온이 0도를 밑돈다. 가장 추운 1월의 평균 기온은 영하 45.9도에 달한다.

하지만 여름철인 6월부터 8월까지는 영상 10도 이상의 선선한 날씨가 유지돼 수목이 자라고 경작도 가능하다. 극한의 추위에도 현재 1,300명가량이 살고 있는 이유다. 사람의 정착은 163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몽골·오스만튀르크 등에 쫓겨 동토를 헤매던 슬라브계 유목민족 카자크족이 둥지를 틀었다. 자유를 찾아 떠돌다 베르호얀스크에 도착한 카자크족이 외침을 막기 위해 깃발을 꽂고 요새를 구축한 게 도시의 시초다. 이후 사람이 살 수 없을 것 같던 얼어붙은 땅에 집이 생기고 생명의 온기가 퍼져 오늘에 이르렀다.


‘위쪽에 있는 도시’라는 뜻처럼 베르호얀스크는 추운 변방 지역에서 소련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 집권 당시에는 정치범 유배지로 쓰였다. 인근 베르호얀스크 산맥에 도로를 건설할 때 이 지역에 수용된 정치범 가운데 많은 사람이 강제노동 도중 사망했다. 이 아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에서 스탈린 사후 베르호얀스크에는 ‘스탈린의 죽음의 반지(Stalin’s Death Ring)’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최근 베르호얀스크 기온이 역대 최고인 섭씨 38도까지 치솟았다. 이 지역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1885년 이후 가장 높은 기온이었다. 이상고온에 놀란 세계기상기구(IMO) 등에서 러시아 당국에 확인을 요청하자 로만 빌판드 러시아 기상청장이 공식적으로 온라인 기자회견을 열어 ‘영상 38도’ 기록을 밝히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뜨거운 베르호얀스크’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이라는 분석이다. 동토층까지 덮친 온난화의 역습이 빨라지고 있다.

/임석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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