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의 취향은 아날로그다. 방 한쪽엔 오래된 레코드판이 쌓여 있고, 매달 종이로 된 음악 잡지를 구독한다. 유일한 친구인 화분과 대화하는 게 낙인 이 남자는 사람을 돕기 위해 제작된 헬퍼봇, 바로 로봇이다. 클레어는 반딧불이를 직접 보는 게 소원이다. “반딧불은 스스로 빛을 내는 곤충이에요. 몸에 노란색 빛을 내는 기관이 있어 충전하지 않고도 빛을 내요.” 작은 곤충이 누리는 두 달의 생을 ‘누구보다 아름답다’고 하는 그녀 역시 충전 없인 살 수 없는, 올리버와 같은 헬퍼봇이다.
가까운 미래, 낡아 버려진 로봇이 모여 사는 아파트에서 올리버와 클레어가 만난다. 서툴지만 진정성 있는 만남을 통해 둘은 프로그래밍된 역할을 넘어 인간의 감정을 배워가고, 사랑에 빠진다. 인간의 그것만큼이나 인간적인 로봇의 사랑을 그린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다.
어쩌면 뻔한 로맨스물이다. 남녀가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이들에겐 시간(수명)이 얼마 없다. 끝이 정해진 사랑에 최선을 다하려는 남녀의 이야기는 이미 숱한 최루성 멜로물에서 만나왔다. 인간보다 인간 같은 로봇이 등장하는 설정도 더는 새롭지 않은 영화·드라마의 단골 소재다.
식상할 법도 한 소재와 스토리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관객의 누선(淚線)을 건드리는 묘한 힘이 있다. 곳곳에 깃든 따뜻한 아날로그 감성 때문이다. 배경은 21세기 후반 미래 도시라지만, 무대에선 우리의 아련한 향수를 자극하는 장면이 펼쳐진다. 올리버와 매일 만나는 집배원, 정기구독으로 받아보는 종이 잡지, 오래된 레코드판 등 지금의 우리도 잊고 사는 일상의 무엇,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과의 관계가 두 로봇을 통해 그려진다. 주인 가족에게 버려졌지만 자신의 화분은 애지중지 보살피는 올리버와, 옛 주인의 사랑과 이별을 보며 ‘영원한 마음은 없다’고 믿어온 클레어. 사랑마저도 철마다 바뀌는 스마트폰마냥 유행을 타는 세상에서 우리의 삶과 닮은 이들의 이야기는 관계의 진정성에 대해 곱씹어 볼 시간을 선사한다. 작품의 배경을 첨단 기술이 난무하는 먼 미래가 아닌 비교적 가까운 21세기 후반으로 잡은 점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우린 왜 끝이 분명한 그 길을 함께 걷기 시작했을까’ 공연 처음과 끝에 흘러나오는 노래처럼 올리버와 클레어의 끝은 정해져 있다. 제아무리 미래라도 사람과 기계의 정해진 수명은 극복할 수 없다. 서로를 위해 사랑했던 기간의 기억(정보)을 지우기로 한 이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사람들은 이 힘든 걸 어떻게 하지?’ 올리버는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보여준다. 뭐가 됐든 아파도 사랑하는 이유를 말이다. 그렇기에 이들의 마지막은 어쩌면 해피엔딩이 아닐까.
2016년과 2018년에 이은 세 번째 시즌으로 7월 공연은 이미 매진될 만큼 예매 경쟁이 치열하다. 올리버는 정문성·전성우·양희준, 클레어는 전미도와 강혜인·한재아가 연기한다. 9월 13일까지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1관.
/송주희기자 ssong@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