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 비정규직 해법, 함부로 말하지 말라

송영규 여론독자부장
제조업부터 4차산업까지 분포
특고·외국인 등 통계 포함안돼
인국공처럼 단순히 접근 말고
있는 그대로의 진실 받아들여야

송영규 여론독자부장

경기도 김포에 ‘대곶’이라는 읍이 있다.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지만 안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이곳의 주인은 내국인이 아니라 이주노동자들. 주말이면 네팔,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에서 온 이들로 넘쳐난다. 모두 이곳에 자리 잡은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있다. 당연히 정규직은 거의 없다. 임시직 또는 일용직, 흔히 얘기하는 ‘비정규직’이다. 물론 관련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치열한 사교육 경쟁을 거친 우리 젊은이들은 이곳에서 볼 수 없다. 당연하다. 노동조건이 열악하고 임금도 형편없으며 발전 가능성은 더 없으니까. 한마디로 가성비가 바닥이기 때문이다.

특수고용노동자(특고)라 불리는 이들이 있다. 포크레인 운전사나 보험설계사나 시간강사, 학습지도사 등이 대상이다. 매일 집에 택배나 배달음식을 갖다 주는 이들, 즉 ‘플랫폼 노동자’도 여기에 속한다. 이들 역시 실적이 안되면 쫓겨나 실직자가 된다. 정부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드러나지 않은 비정규직이다. 그저 220만 명 정도 될 것이라는 추정만 존재할 뿐이다.

통계청 발표를 보면 국내 비정규직 규모는 지난해 9월 기준 748만 명, 전체 임금 노동자의 36.3%다. 특고까지 포함하면 국내 비정규직은 대략 1,000만 명에 육박하는 수준이 될 터다. 임금 노동자 2.5명 중 1명, 국민 5명 중 1명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제조업체부터 소위 4차 산업까지 없는 곳이 없고 내·외국의 구분도 없다. 사회에 만연한 차별과 부당 대우도 이들을 통해 투영된다. 비정규직 문제가 단순하지 않은 이유다.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면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최근 논란이 됐던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직고용이다. 물론 직고용을 한다고 ‘인국공’에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비용 증가에 대한 책임을 묻지는 않을 테니. 취준생들의 반발이 있겠지만 ‘비정규직을 없앴다’는 대외명분이 있으니 그만이다. 돈 많은 대기업도 불편하고 비용부담은 있겠지만 어찌어찌 넘어갈지 모른다.

우리 경제가 공기업과 대기업으로만 굴러간다면 해 볼 여지가 없는 건 아니다. 문제는 현실이 그렇지 않다는 데 있다. 비정규직들의 주된 노동현장은 전체 사업체의 99%, 고용노동자의 83%를 담당하는 중소기업들이다. 모두 정규직만 채용한다면 그 비용은 어떻게 감당할지 걱정이 태산일 곳들이다. 이들이 감당하지 못한다면 여기서 일하는 비정규직은 대·중소기업을 가르는 또 다른 차별로 남게 된다. 만에 하나 중소기업들이 정규직만 뽑는다 해도 기존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어찌할 것인가. 내국인은 정규직으로 뽑고 외국인은 비정규직으로 태평양 건너 있는 인종주의자들과 다를 게 뭔가.

중소기업을 배려하려고 공기업이나 대기업만 정규직 세상으로 남겨둬 보자. 비용 부담은 차치하고 경제가 제대로 굴러갈 리 없다. 그렇지 않아도 젊은이들이 중소기업에 가는 걸 꺼리는데 이제는 아예 거들떠보지 않을 테니 말이다. 소재부품 국산화 같은 얘기는 아예 휴지통에 버려야 한다.

SNS를 검색하다 눈에 들어온 글이 있다. “한국 진보는 비정규직 문제를 제대로 진단하고 있는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한국 진보는 비정규직 문제의 진짜 핵심을 모르고 있다.” 진보, 그것도 한때 더불어민주당 정책통이었던 이의 지적이다. 그가 말한다. “한국 진보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아직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마주 보고 있지 않다. 진보 일각에서는 ‘보수, 자본, 악마집단’이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를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고 실체적 진실은 그보다 복잡하다.“

그의 말마따나 잘못된 접근은 잘못된 결론을 낳는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올바른 결론의 첫걸음이다. 해법은 언제나 두 발을 땅에 딛고 있을 때만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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