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의료업계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달 28일 열린 건정심에서 첩약 급여화 시범사업 계획안을 제출하면서부터 논란은 시작됐다. 첩약은 여러 약재를 섞어 달인 탕약을 복용하기 쉽게 팩에 담은 것. 현재 건강보험 적용이 안 돼 전액 환자가 부담하는데 우선 수요가 많은 3개 첩약에 대해 건강보험에서 절반을 지원해주겠다는 게 계획안의 골자다. 이미 침이나 뜸, 부황, 추나요법 등이 건강보험 안으로 들어왔는데 첩약만 비급여인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고 첩약 가격이 너무 비싸다는 문제 제기가 꾸준히 있었다. 실제 대한한의사협회에 따르면 치료용 첩약 한 제(10일치)의 평균 값(관행 수가)는 23만9,000원 수준이다.
첩약이 급여화되면 환자 부담이 적어진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시범계획안을 보면 첩약 한 제당 수가(의사가 환자와 건강보험으로부터 받는 돈)를 14만~16만원으로 책정했다. 이 중 50%는 건강보험이, 50%는 환자가 부담하는데 몇 가지 제약이 있다. 시범사업은 월경통, 안면신경마비, 뇌혈관질환 후유증 3개 질환 만을 대상으로 하고 환자당 연간 한 제에 대해서만 건강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다. 한의사도 1인당 월 30건·연 300건으로 처방량에 제한이 있다. 국민 입장에서는 연 7만~8만원가량을 아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의료계는 건보 재정이 넉넉치 않은 상황에서 안전성과 유효성이 검증되지 않은 첩약에 3년간 1,500억원을 쓰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한다. 이미 행동에도 나섰다. 지난달 28일 열린 결의대회에서 최대집 대한의사협회장은 “포퓰리즘에 매몰돼 국민의 충고를 무시한다면 이 정부가 그토록 자랑하는 K방역이 의사 총파업으로 파국에 이르는 것을 보게 될 것”이라며 경고했다. 의협은 지난 3일에도 반대 집회를 열었다.
한의계에선 이 같은 주장이 의사들의 ‘밥 그릇 지키기’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한 관계자는 “의사들은 건강보험 재정이 전부 자기 것이라고 생각해 한의사 몫이 조금이라도 커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것”면서 “일본이나 중국에선 이미 첩약이 건강보험에 편입됐다”고 말했다.
다만 한의계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기도 한다. 첩약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면 헐값에 수가가 매겨질 수 있고 큰 매출을 올리던 한의사들 중 일부는 수익이 줄어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대한한의사협회가 지난달 24일 진행한 시범사업 찬성 여부 투표에선 찬성률이 63%에 그쳤다.
첩약 급여화 논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2년 66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첩약 급여화 정책이 건정심을 통과했으나 한의계 내부 갈등으로 물거품이 됐다.
이번 사업의 운명은 오는 24일 건정심 본회의에서 결정될 예정인데 전망이 엇갈린다. 최종 확정되면 오는 10월부터 시범사업이 본격 시작되지만 통과하지 못하면 8년을 끌어오던 논쟁이 수년간 또 다시 지속 될 것으로 보인다. 한 관계자는 “의사, 한의사만 얽혀있는 문제가 아니라 약사·한약사 등의 입장도 각기 달라 많은 협의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주원기자 joowonmai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