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용 뱅크샐러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리더./권욱기자
세계 최대 공유 숙박업체인 에어비앤비는 최근 한 기술자의 제안에 따라 흥미로운 실험 하나를 진행했다. 웹 이용 고객에게 검색부터 결제까지 전 과정을 한 화면에서 제공해온 기존 서비스를 검색 이후 숙소별 조회 화면부터 새 창에서 보여준다면 어떤 차이가 발생할까. 새 창 하나를 더 띄워도 달라질 것이 없다는 내부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에어비앤비 실험플랫폼팀은 직원의 제안을 흘려듣지 않고 곧바로 실험에 착수했다. 일부 고객에 한해 새로운 창이 팝업되도록 프로세스를 바꿨다. 로그인부터 고객이 원하는 지역과 날짜의 숙소 검색 리스트 제공까지는 동일한 창에서 보여주되 검색 리스트에서 원하는 숙소를 선택할 때마다 숙소 정보를 새 창에서 보여주는 식이다. 결과는 놀라웠다. 새 창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군의 예약률이 기존 고객군보다 2% 높아진 것이다. 에어비앤비는 실험 결과에 따라 새 창을 제공하는 형태로 서비스를 전면 재정비했다.
매일 이 같은 플랫폼 실험을 벌이는 에어비앤비에서 실험플랫폼 전문가로 활동하다 지난 4월 국내 핀테크업체인 뱅크샐러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리더로 자리를 옮긴 이가 있다. 이민용(33·사진) 스탠퍼드대 통계학 박사다. 그는 7일 서울경제와 만나 “아직 이용자를 대상으로 한 플랫폼 실험을 생소하게 느끼는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실험을 통해 검증하는 것이 당연한 분위기”라며 “이곳의 혁신기업들은 서비스를 출시하기 전 수많은 실험단계를 거치는데 서비스를 먼저 선보인 후 피드백을 통해 차차 개선해나가는 것이 아니라 출시 전부터 고객의 니즈를 파악해 실험을 진행하고 실험에서 살아남은 정교한 서비스만을 시장에 소개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실험은 성공하기가 매우 어려운데도 실리콘밸리에서 여러 실험이 꾸준히 진행되는 이유는 내부적으로 실험에 대한 수요가 높은데다 실패를 용인하는 분위기 때문”이라며 “에어비앤비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실험만 500개에 달했지만 이 중 성공하는 실험은 몇 개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민용 뱅크샐러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리더. /권욱기자
실리콘밸리에서 당연하게 생각하는 실험이란 무엇일까. 이 리더는 여러 실험 방식 가운데 AB테스팅을 소개했다. 디지털 마케팅에 자주 쓰이는 AB테스팅은 두 가지 이상의 테스트 시안을 두고 최적의 시안을 선정하기 위해 진행하는 실험 방식이다. 예를 들어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 카테고리 이용자 유입을 끌어올리기 위해 웹사이트 개편을 진행할 경우 실험군에 해당 카테고리를 왼쪽에 배치한 A 시안과 이를 오른쪽에 배치한 B 시안을 무작위로 보여준 후 실험군의 뉴스 카테고리 유입률이 높게 나온 시안을 결정하는 식이다.
그는 “새로운 기능을 출시하거나 웹·앱 디자인을 바꿀 때 적용할 기능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고객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보기 위해 일부 사용자에게 특정 기능을 보여주고 다른 사용자에게는 원래 기능을 보여주면서 효과를 통계적으로 분석해 결론을 내는 것이 온라인 실험”이라며 “큰 변화만 실험하는 게 아니라 웹과 앱상의 버튼 색깔 변화, 문구 변화 같은 작은 부분에 대해서도 실험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실리콘밸리의 매력적인 실험 문화는 이 리더가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로 진로를 정한 결정적인 이유가 됐다. 대통령 과학 장학생으로 서울대 수리과학부에 입학하고 수석으로 졸업한 수재이기도 한 그는 2012년 스탠퍼드대학교 통계학 박사 학위 취득을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구글·트위터·페이스북 등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데이터를 수집하고 데이터 활용법을 한창 모색하던 시기였다. 이 리더가 미국에 첫발을 디뎠을 때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는 불과 2·3년 만에 글로벌 IT 공룡들의 주도 속에 기업의 주요 미래 먹거리로 자리 잡았다.
미국 내에서 데이터 사이언스 분야가 각광을 받자 그의 관심도 자연스럽게 이 분야로 쏠렸다. 박사 과정 중 글로벌 피트니스 웨어러블 회사인 핏빗과 에어비앤비에서 인턴으로 근무했고 2017년 졸업과 동시에 에어비앤비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정식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글로벌 기업들이 2010년대 초반부터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하면서 실리콘밸리에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들이 대거 육성되기 시작했다”며 “에어비앤비
소속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만 해도 300명에 달하는데 이들은 세분된 각 팀에 분산 배치돼 각 사업의 효율성을 끌어올릴 실험을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이민용 뱅크샐러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리더./권욱기자
실제 미국에서는 기업뿐만 아니라 대학들까지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 교육기관을 통해 양질의 전문가를 배출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기업들 역시 내부 인력을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육성하는 한편 비IT 직원을 대상으로 데이터 교육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이 리더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글로벌 기업들의 매출 90%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온라인 광고에서 발생하다 보니 초기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의 주요 업무는 기업 매출을 늘릴 수 있는 광고 마케팅에 집중돼 있었다”며 “미국 데이터 시장이 성숙하면서 현재는 광고보다는 이용자 경험을 기반으로 이용자 개인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추천해줄 수 있는 고도의 전문성을 갖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를 육성하는 데 집중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어 “스탠퍼드대에서도 기존 금융 수학 석사 프로그램을 데이터 사이언스 프로그램으로 전환하는 등 학교도 양질의 데이터 전문가를 배출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며 “미국의 데이터 사이언티스트가 뛰어난 경쟁력과 전문성을 갖출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실리콘밸리에서 역량을 키우던 그가 한국으로 눈길을 돌리게 된 것은 한국에서도 개인정보보호법·정보통신망법·신용정보법 등 데이터3법 통과로 데이터 활용과 관련한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리더는
이민용 뱅크샐러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리더./권욱기자
“박사 과정차 미국으로 향할 때부터 그곳에서 경험을 쌓은 후에 꼭 한국으로 돌아와 한국 기업에 기여하겠다고 결심했다”며 “올해 초 도통 움직임이 없었던 한국의 데이터 시장도 변화하기 시작했고 한국 시장도 데이터를 활용하는 문화와 데이터에 대한 기업들의 자세가 성숙해가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가 실리콘밸리를 뒤로하고 뱅크샐러드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 데이터 시장에서 뱅크샐러드의 성장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기 때문이다. 방대한 데이터를 보유한 뱅크샐러드가 실험을 본격적으로 진행한다면 데이터 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는 “뱅크샐러드는 국내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미국에서는 사용해볼 기회가 없었는데 앱을 처음 열어보고 기술적으로 뛰어나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이미 상당한 데이터를 축적해놓은 만큼 실험을 통해 앱 자체의 사용성을 개선해나간다면 대기업 못지않은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라 봤다”고 말했다.
이 리더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뱅크샐러드 고객이 기존에 경험해보지 못한 서비스를 경험할 수 있게 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우리나라 데이터 사이언스는 인공지능(AI)과 머신러닝에만 집중돼 있는데 데이터 사이언스의 활용법은 다양하다”며 “사용자 자체 데이터뿐만 아니라 앱 사용 데이터 등 뱅크샐러드가 보유한 데이터양이 이미 충분한데다 아직 시도해보지 않은 실험이 많다는 점에서 뱅크샐러드의 앱 편의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그는 또 “물론 앞으로 뱅크샐러드에서 진행될 모든 실험이 다 성공하지는 않겠지만 여러 실험을 통해 고객이 알게 혹은 고객이 모르게 서비스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진화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지윤기자 lucy@sedaily.com
이민용 뱅크샐러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리더./권욱기자
[He is]
△1988년 경북 구미 △2003년 서울과학고등학교 입학 △2006년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대통령 과학 장학생 입학 △2012년 서울대학교 수리과학부 수석 졸업
△2012~2016년 관정 이종환 국외 유학 장학생 △2017년 스탠퍼드대학교 통계학 박사 △2017~2020년 에어비앤비 데이터 사이언티스트 △2020년~ 뱅크샐러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