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수치심과 슬픔의 날에 우리는


삶이 쉽다거나 확신에 차 있다는 건 아니다. 완강한 수치심의 그루터기들, 수많은 세월이 지난 후에도 해결되지 못하고 남아 있는 슬픔, 아무리 춤과 가벼운 발걸음을 요구하는 시간이라 할지라도 어디를 가든 늘 지고 다니는 돌자루가 있다. 하지만 우리를 부르는 세상, 경탄할 만한 에너지들을 가진 세상도 있다. 분노보다 낫고 비통함보다 나은, 더 흥미로워서 더 많은 위안이 되는 세상. 그리고 우리가 하는 것, 우리가 다루는 바늘, 일이 있으며 그 일 안에 기회―뜨거운 무정형의 생각들을 취하여 그것들을 보기 좋고 열을 유지하는 형상 안에 집어넣는 느리고 세심한 노력을 기울일―가 있다. (…) 곧, 나는 내 삶을 주장하기로 결심함으로써 일과 사랑을 통해 멋진 삶을 만들어나가게 되었던 것이다. (메리 올리버, ‘긴 호흡’, 2019년 마음산책 펴냄)



몸에도, 인생에도 깊고 ‘긴 호흡’이 필요하다고 느껴질 때, 미국 시인 메리 올리버의 책을 읽는다. 아침 알람 소리에 따귀 맞듯이 일어나 헉헉대며 일터로 나가고, 수시로 훅 복받침을 느끼는 한낮에도, 답 없는 문제들에 전전긍긍하게 되는 저녁에도, 메리 올리버는 독자를 심호흡하게 하는 작가다. 우리는 누구나 수치심과 상처와 슬픔이 잔뜩 든 돌자루를 지고 휘청휘청 걸어간다. 하지만 돌자루에 짓눌려 분노와 비통함으로 스스로를 주저앉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돌자루를 걸머지고 새로운 곳으로 나아가는 사람이 있다.

수치심은 완강하고 슬픔은 어차피 해결되지 않는다. 세심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는 일과 사랑을 찾아내, 내 삶을 다져나갈 뿐이다. 수치심과 슬픔에 헉헉 흑흑 숨이 가빠질 때, ‘긴 호흡’으로 내 인생을 원거리에서 바라본다. 누구나 지고 있는 돌자루에 엄살 부리지도 핑계 대지도 않으며, 다시 시작해본다. 깊고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문학동네 편집팀장 이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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