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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균 국무총리가 8일 다주택 고위공직자들을 대상으로 하루빨리 집을 팔 것을 경고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공직사회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정 총리는 이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회의를 주재하며 당초 의제로 예정되지 않았던 부동산 문제를 꺼내 들었다. 그는 “최근 부동산 문제로 여론이 매우 좋지 않고 정부가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지만 고위공직자들이 여러 채의 집을 갖고 있다면 어떠한 정책을 내놓아도 국민들의 신뢰를 얻기가 어렵다”며 “각 부처는 지방자치단체를 포함해 고위공직자 주택 보유 실태를 조속히 파악하고, 다주택자의 경우 하루빨리 매각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주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고위공직자 30%가 아직도 다주택…“솔선수범할 시기 이미 지났다” |
실제로 3월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가 행정안전부 관보에 공개한 정기 재산변동사항 등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18개 부처 40명의 장·차관 중 장관 8명, 차관 6명 등 총 14명이 2주택 이상을 보유한 ‘다주택자’로 파악됐다. 특히 서울 관악구 다세대주택과 종로구 오피스텔, 서대문구 단독주택을 소유한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 서울 서대문구 단독주택, 종로구 아파트, 일본 도쿄 아파트를 보유한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무려 3주택자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최기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도 주택을 두 개씩 보유하고 있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부동산대책을 최전선에서 지휘하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경기 의왕시 아파트와 세종시 나성동 아파트 분양권을 갖고 있다.
참여연대, 국회 기재위.국토위 다주택자 주택 매각 촉구 기자회견/연합뉴스
차관 중에서는 박백범 교육부 차관이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단독주택 1채와 청주시 흥덕구에 단독주택 2채를 보유한 3주택자이며 김용범 기재부 차관, 고기영 법무부 차관, 정병선 과기정통부 차관, 윤종인 행안부 차관 등은 2주택자다.
대상을 1급 공무원 이상으로 확대해도 다주택자 비중은 3분의1로 엇비슷했다. 당시 정기 재산변동사항에 따르면 중앙부처 재직자 750명 중 248명이 다주택자였다. 이들 중 2주택자가 196명이었고 3주택자는 36명, 4주택자도 16명에 달했다. 이는 상가 등을 제외하고 공직자 본인과 부인 명의로 된 아파트와 다세대주택·연립주택 등을 모두 더한 결과다.
“집 안 팔면 승진 불이익 올까”… 공직사회 술렁 |
주요 경제·사회부처 청사가 세종으로 이전하면서 가족이 머무는 서울을 오가야 하는 경우가 많아 세종 근무 공무원들 중에는 2주택자가 적지 않다. 서울·경기권에 기존 주택을 두고서 세종에 공무원 특별분양을 신청해 2주택자가 된 경우도 많다. 당장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부터 경기도 의왕에 아파트가 있으면서 정부청사가 있는 세종에 특별분양을 받아 2주택자가 된 케이스다.
이날 정 총리의 지시에 따라 고위공무원단에 속하는 정부부처 국장급 이상 다주택 공무원은 하루 아침에 집을 팔아야 하는 대상이 됐다. 재산 공개 대상인 1급을 포함해 2급 이상 국장급까지 범위가 넓어졌다. 중앙정부부처 기준으로 1급 이상 고위공직자는 150여 명, 2급까지 확장하면 1,500명 가량에 육박한다. 정부 부처의 한 고위공무원은 “국민이 공직사회에 요구하는 게 법적 의무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요즘은 뼛속까지 청렴하길 요구하는 것 같다”면서 “성인군자가 아니면 공무원 하기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푸념했다. 사회부처의 한 공무원은 “긴급재난지원금도 기부하라고 하더니 이제는 집도 2채 이상 갖지 말라고 한다”며 “정권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공무원들에게 과도한 희생을 강요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정부 ‘쇼’에 애꿎은 공무원만 피해”…공무원들 ‘부글부글’ |
경제부처의 과장급 공무원은 “‘부글부글’이라는 표현보다는 황당하고 어이없다는 생각 뿐”이라며 “부동산도 엄연한 사유재산인데, 이에 대한 처분을 총리가 직접 지시한다는 게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공무원은 “앞으로 장·차관 승진 요건을 따질 때 능력보다는 주택을 몇 개 소유했느냐부터 따져보게 되는 것 아니냐”라며 “특정 자산에 대해 대상 집단을 직접 지목하며 처분하라는 지시를 들어본 적 없다”고 토로했다.
세종청사로 출근 중인 공무원들/연합뉴스
‘다주택자=집값 상승의 주범’이라는 전제를 공무원들에게 일괄 강제하는 것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오는 중이다. 부동산시장 실패의 원인을 공급 자체를 실종시킨 정부의 부동산정책에서 찾지 않고 투기꾼 사냥을 하듯 공무원사회부터 헤집는 데 동의할 수 없다는 불만이다. 실태조사 대상은 ‘2급 이상’이지만 어차피 대다수의 공무원이 승진 등을 염두에 둬야 하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말단 공무원에게까지 압박을 주는 것과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세종시의 한 중앙부처 공무원은 “정치인 출신 참모들이 엉뚱한 규제로 시장 수급을 왜곡한 것은 결코 인정하지 않으면서 아직도 다주택자에 목을 매고 있다”며 “장·차관들도 3년 동안 기회를 줬는데 다주택자인 마당에 끝까지 버티는 사람도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윤경환·세종=한재영기자 ykh2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