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승승장구하며 부러움을 한몸에 받던 친구가 실의에 빠졌다. 힘들어하는 친구를 토닥이고 위로하지만 어딘가에서 알 수 없는 통쾌함이 스멀스멀 솟아난다. 주변 사람에게만 느끼는 감정은 아니다. 명문대 출신에 훌륭한 집안, 심지어 인물까지 출중한 장관이 딸의 부정 입학 논란으로 사퇴했다는 기사의 댓글을 찾아 읽으며 고소해하고, 버스 정류장에서 내 앞으로 새치기한 사람이 넘어지는 모습을 보고 잘됐다고 생각한다. 이러면 안 될 것 같은데, 그럼에도 솟아나는 이 감정은 대체 뭘까. 당신은 지금 바로 남의 불행을 보며 느끼는 은밀한 기쁨,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를 느끼고 있다.
신간 ‘위로해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는 다양한 상황에서 느끼는 샤덴프로이데를 설명하며 우리가 그 감정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왜 우리는 남의 불행을 즐거워하는지 살펴본다. 샤덴프로이데를 가까이 들여다보면 보다 깊고 복잡한 감정이 모습이 드러나며,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면까지 발견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인 티파니 와트 스미스는 현재 영국 런던퀸메리대학교의 ‘감정의 역사 센터’ 연구원으로, BBC 라디오와 영국 예술·인문 연구위원회AHRC에서 2014년에 선정한 ‘새로운 세대의 사상가’ 중 한 명이다.
‘샤덴프로이데’는 독일어로 피해나 손상을 뜻하는 ‘샤덴’과 기쁨이나 즐거움을 뜻하는 ‘프로이데’가 합쳐진 말이다. 직역하면 ‘피해를 즐기다’로, 딱 떨어지는 우리말은 없지만 ‘쌤통 심리’ 정도로 해석될 수 있겠다. 쇼펜하우어와 같은 철학자와 도덕주의자들은 오래 전부터 샤덴프로이데를 비난해 왔다. 하지만 쇼펜하우어가 ‘인간이 지닌 최악의 본성’이라고까지 표현한 샤덴프로이데를 두고 저자는 대부분이 무해한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게다가 샤덴프로이데는 다른 사람도 우리처럼 실패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며 열등감을 약간의 우월감으로 바꾸어 인생을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해준다고 분석한다. 잘나가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자존감을 잃고 혼자 실의에 빠지기보다는, 타인의 불행에 기뻐하면서 우리의 질투가 적의와 앙심으로까지 나아가지 않도록 막아주는 완충제 역할을 해준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샤덴프로이데는 분명 칭찬하거나 권장할 만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저자는 샤데프로이데를 느낀다고 해서 나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책 말미에서 저자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분명 샤덴프로이데는 흠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겐 그것이 필요하다. 구원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1만5,000원.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