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아이] 美 공세에도 동요 않는 홍콩달러

■'홍콩보안법 안착' 혈안된 中
돈 쏟아붓고 기업상장 유도
차이나머니 90억弗이상 투하
증시 불붙고 홍콩달러 강세로
넷이즈·징둥 등 매머드 이어
바이두·씨트립도 상장 준비
美 '페그제 폐지' 으름장에도
정부 "독자 유지 가능" 호언


홍콩의 중앙은행 격인 홍콩금융관리국(HKMA)은 지난 9일 134억홍콩달러를 투입해 미국달러(17억달러)를 사들였다. 홍콩으로의 해외자본 유입이 늘어나면서 홍콩의 달러페그제(고정환율제) 변동 범위인 달러당 7.75~7.85홍콩달러 밴드를 이탈할 조짐을 보였기 때문이다. 홍콩 정부의 개입 덕분에 이날 밴드의 하한선인 7.75홍콩달러를 간신히 지킬 수 있었다. 올해 들어 7.75홍콩달러를 찍은 것은 지난 6일에 이어 두 번째였다. 홍콩 정부가 올 들어 투입한 자금만도 135억달러에 이른다.

중국의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 이후 미국이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하는 차원에서 달러페그제를 무력화하려 한다는 소식이 들리는 가운데 홍콩달러는 연일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언론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홍콩의 달러페그제를 흔들기 위한 조치를 취하기 위한 움직임에 나섰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지만 홍콩 금융시장은 크게 동요하지 않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중국 자본이 ‘뒷배’ 노릇을 하고 있다고 본다. 홍콩보안법의 안착을 위해 금융불안을 방지해야 한다는 의도에서다. 중국 지도부는 주식 등 홍콩 자본시장에 차이나머니를 투입하는 것과 함께 우량 중국 기업들의 홍콩 상장을 은근히 부추기고 있다. 홍콩 정부도 이런 시진핑 지도부의 속내를 읽고 있는 듯 ‘금융허브’의 안전판인 페그제를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다며 자신만만해 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5월21일 홍콩보안법 제정 계획을 공개한 후 홍콩으로 유입된 중국 자본은 90억달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 덕분에 홍콩 증시가 활황을 보이고 홍콩달러의 강세도 지속되고 있다. 배니 램 CEB인터내셔널캐피털 애널리스트는 “낙관적인 전망이 홍콩으로 단기자본과 유동성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미중 무역전쟁 기간에 줄곧 약세였던 홍콩달러가 지난해 11월을 기점으로 강세로 돌아선 데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 중국 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제4차 전체회의(4중전회)에서 ‘홍콩에서 국가안보를 수호할 법률과 집행 시스템을 갖출 것’을 규정했는데 이는 홍콩보안법의 전조였다. 이후 중국 자본 유입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지난 8일(현지시간) 홍콩 코즈웨이 지역에서 중국의 파견기관인 홍콩 국가보안처 현판식이 열린 가운데 캐리 람(왼쪽 두번째) 홍콩 행정장관과 둥젠화(〃 세번째) 전 행정장관이 웃으며 현판을 가린 커튼을 걷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상장사인 중국의 대기업이 홍콩으로 옮기는 것도 홍콩달러 강세를 이끄는 배경 중 하나로 거론된다. 나스닥 상장사인 알리바바가 지난해 11월 홍콩에 2차 상장한 데 이어 올 6월에는 중국 정보기술(IT) 대기업 넷이즈, 중국 2위 전자상거래 업체 징둥이 함께 홍콩에서 2차 상장했다. 이를 통해 넷이즈는 27억달러, 징둥은 38억달러를 각각 조달했다. 바이두·씨트립 등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바이두의 리옌훙 회장이 5월21일 중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말고도 상장할 곳이 많다”며 “홍콩 2차 상장도 검토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것이 관심을 모았다.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위원이기도 한 리 회장이 이런 말을 한 곳은 양회다.

홍콩은 1983년부터 홍콩달러를 미국달러에 연동시킨 페그제를 유지하고 있다. 당초 1달러에 7.8홍콩달러를 고정시켰지만 2005년부터는 7.75~7.85홍콩달러로 소폭 변동을 허용했다. 환차손에 대한 걱정이 없고 자유로운 달러 환전이 가능하다는 환경이 다국적 기업들을 유치하고 금융허브 지위를 유지하는 데 핵심역할을 했다. 미국 블룸버그통신이 7일 트럼프 미 행정부가 홍콩보안법 제정에 대한 보복으로 홍콩달러페그제를 폐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하자 폴 찬 홍콩 재무장관은 “홍콩의 외환보유액은 4,459억달러로, 페그제를 방어하기에 충분하다”고 일축했다. 홍콩 정부는 미국의 움직임과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페그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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