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뉴스]주름골 깊어지는 보톡스 전쟁…승자는 누구?

메디톡스, 국내 허가 취소됐지만
대웅제약 상대 ITC 소송 승기 잡아
‘주보’ 미국서 10년 간 퇴출 위기
美 엘러간 등 경쟁업체 ‘웃음’


지난 6일(현지시간)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대웅제약(069620)이 메디톡스(086900)의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보툴리눔 톡신 제품 ‘주보’의 미국 내 수입을 10년간 금지한다고 판결했다. 보톡스로 널리 알려진 보툴리눔 톡신 기반 주름 개선 치료제를 둔 양 사간 다툼이 메디톡스의 승리로 사실상 종지부를 찍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메디톡스의 표정이 그리 밝지 만은 않다. 분쟁을 벌이며 수백억원의 소송비용을 들인데다 국내에서는 제조·품질관리 서류 조작을 이유로 대표상품 메디톡신 일부 제품군의 허가가 취소돼서다. 결국 이번 다툼의 승자는 보톡스의 원조격인 미국 엘러간 등 경쟁업체라는 해석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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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보톡스, 탄생부터 사용까지

상한 소시지를 먹고 생기는 식중독에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이라는 병원균이 관여한다는 사실이 발견된 것은 1895년. 이후 1960년대 들어 보툴리눔 A형 독소가 사시 치료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고 1987년 보툴리눔 독소 치료 도중 주름이 없어지는 환자가 나타났다. 1989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엘러간의 ‘보톡스’를 승인할 때만 하더라도 사시 치료와 안검경련, 국소 경련 등 치료 목적이었지만 1990년대 들어 보톡스의 주름제거 효과가 피부과, 성형외과 의사들에게 널리 알려지며 미국 전역에서 주름제거 시술이 늘었다.

한국에서는 정현호 메디톡스 대표가 한국과학기술원에서 일하던 1986년부터 연구가 시작돼 2006년 메디톡신 주사제가 국내 자체 개발제품으로 최초 허가를 받았다.

보툴리눔 독소 의약품 시장은 전 세계적으로 소수의 회사만 다루는데, 북미지역에서는 미국 엘러간과 솔스티스 뉴로사이언스, 유럽에서는 프랑스 보프 입센사과 독일 머츠,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란주생물제품연구소와 한국의 메디톡스, 휴젤, 대웅제약 등이 경쟁하고 있다.

보툴리눔 독소 시장이 과점체제를 유지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이 자체가 생물무기금지협약 대상물질로 상업적 판매가 금지돼 오로지 기업이 알아서 균주를 확보해 배양하는 방법 밖에 없어서다. 이 때문에 신규 진입 업체들은 스스로 균주를 발견했다고 외치지만 기존 업체들로부터 제조기술이나 균주를 가져갔다는 의혹이 항상 따라다닌다.

주보

②메디톡스-대웅제약 혈투


국내 보툴리눔 톡신 제재 시초 격인 메디톡스와 후발사업자인 대웅제약 간 다툼도 여기에서 비롯했다.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이 관련 제품 ‘주보’를 만들 때 자사의 균주를 훔쳤다고 주장한다.

메디톡스는 ITC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균주와 메디톡스의 균주 모두 동일한 조상에서 분화했다고 주장했다.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균주가 메디톡스의 균주에서 유래했다는 얘기다. 메디톡스 측은 “두 균주가 가지고 있는 공통의 유전적 변이(SNPs)를 확인했을 때 대웅제약의 균주가 한국 자연환경에서 분화돼 진화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반면 대웅제약은 전체 유전자 서열 분석을 통해 두 균주를 확인했을 때 양 사의 균주가 차이가 있으며 근원이 같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결국 미국 ITC로 다툼이 옮겨갔고, 메디톡스가 예비판정에서 승리하며 논란도 점점 종착점을 향해가고 있다.

메디톡신/사진제공=메디톡스
③국내외 시장 어떻게 바뀔까

메디톡스가 대웅제약과 싸움에서는 승리했지만 사정은 좋지 않다. 우선 텃밭 국내시장을 모두 뺏길 위기에 처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메디톡스의 메디톡신주 50·100·150단위의 허가를 취소해 사실상 국내 매출이 급감할 것으로 전망된다. 식약처는 앞서 지난 4월17일 메디톡스가 허가 내용과 다른 원액을 사용하고 제품의 시험 결과가 기준을 벗어났는데도 모두 문제가 없는 것처럼 자료를 조작해 제출했다며 시장 퇴출 결정을 내렸다. 메디톡스가 이 처분 취소 청구소송 등에 나섰지만 대전지방법원은 지난 9일 이를 기각했다.

메디톡스는 미국과 중국 등 해외시장에서 살길을 찾겠다는 방침이지만 국내 시장 공백이 상당하다.

소송전에서 진 대웅제약은 간신히 진입한 미국시장에서 쫓겨날 위기에다 국내외 민사소송에서도 궁지에 몰리게 됐다.

이미 두 회사는 상당한 소송 관련 손실을 입었다. 대웅제약이 지난해 메디톡스와의 소송에 지출한 돈만 210억원에 이른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양 사가 소송전에 뛰어들며 결국 글로벌 업체들만 덕을 봤다는 이야기도 나온다”며 “회사들로서는 밀릴 수 없는 싸움이었겠지만 국가로 볼 때는 이득이 없었다”고 말했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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