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연합뉴스
미국 대선 전 북미 대화 가능성이 한미 양국에서 조심스럽게 제기됨에 따라 문재인 대통령이 대대적으로 교체한 외교안보 라인이 이달 안에 본격적으로 검증대 위에 서게 됐다. 문 대통령은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와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요청안을 국회에 서둘러 제출했고, 서훈 신임 국가안보실장은 한국을 방문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겸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벌써 만나 대북 전략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김여정이 대화 재개 가능성을 두고 연일 신경전을 벌이는 가운데 대표 ‘대북통’인 새 인사들이 인사청문회까지 무사히 넘기고 중재 역할에 시동을 걸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문재인 대통령과 박지원 국정원장 후보자. /연합뉴스
‘두 딸 외국인’ 朴, 軍복무 중 대학 졸업 논란
국회는 지난 8일 문 대통령에 제출한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와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요청안을 접수했다. 요청안에 따르면 박 후보자는 본인 명의 재산으로 총 17억7,385만원을 신고했다. 박 후보자는 본인 명의의 14억7,000만원짜리 서울 여의도 아파트와 예금 3억9,068만원을 신고했다. 1,000만원 상당의 밀레니엄힐튼서울호텔 헬스클럽 회원권도 있다. 박 후보자의 채무는 총 1억4,683만원이다.
다선 의원으로 넓은 인맥을 자랑하는 박 후보자였지만 논란은 곧바로 일었다. 박 후보자가 군 복무 중 단국대에 편입해 3학기 만에 졸업까지 하고 전역했다는 논란이다. 박 후보자는 지난 1965년 4월15일에 입대해 1967년 9월23일 육군 병장으로 만기 전역했다. 그러나 단국대 졸업증명서에는 그가 1965년 9월1일에 입학해 3학기 만인 1967년 2월28일 졸업한 것으로 기록됐다. 그는 단국대 편입에 앞서 광주교육대를 졸업했다.
미래통합당 측은 “당시 병역법상 현역병은 당연히 영내에서 근무해야 하는데 어떻게 대학을 다닐 수 있었는지 그 의혹이 짙다”고 주장했고 박 후보자 측은 이에 대해 “부대장이 ‘공부하라’고 배려해줘 단국대 3학년에 편입해 야간에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고 해명했다.
박 후보자의 두 딸이 미국 시민권자인 것도 국정원장의 배경으로는 적절치 못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1983년과 1985년 광주에서 태어난 두 딸은 박 후보자가 민주당 초선 의원이던 1994년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현재까지 미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다.
최든 김일성 사망 26주기를 전후해 마스크도 안 쓴 채 금수산태양궁전을 참배한 김정은. /연합뉴스
전두환·김정은 찬양 논란도... 文대통령에겐 “충성”
박 후보자의 과거 발언도 이번 인사청문회에서 도마 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하태경 통합당 의원은 지난 9일 페이스북을 통해 “박 후보자는 1980년대 초 재미한인회장 시절 전두환의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고 환영 행사 조직했다”며 “1982년 KBS와 인터뷰에서 ‘한국에는 전두환 대통령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며, 12·12와 5·18은 영웅적 결단이었다’고 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박 후보자는 지난 1982년 10월5일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기도 했다.
하 의원은 또 “(박 후보자가) 2013년 JTBC 인터뷰에서 삼촌인 장성택을 잔인하게 숙청한 김정은에 대해 ‘수많은 군중 앞에서 눈 하나 깜빡이지 않는 모습이 늠름하다’고 찬양했다”라며 “심지어 북한은 박 후보자의 2000년 평양 방문에 대해서 ‘입에 올리기 민망할 정도로 노죽(노골적으로 아부하는 일)을 부리는 연극쟁이’라고 조롱하기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정원장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수호하는 최선봉장”이라며 “독재자에 대한 찬양이 국정원장의 자격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박 후보자는 국정원장 내정 통보를 받은 지난 3일에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역사와 대한민국 그리고 문재인 대통령님을 위해 애국심을 가지고 충성을 다하겠다”고 밝히면서 이목을 끌었다. 3년 전 19대 대통령선거에서 옛 국민의당 소속으로 매일 아침마다 미디어를 통해 문 대통령을 비판해 ‘문모닝’이라는 유행어까지 낳은 사실이 새삼 재조명됐기 때문이다.
그는 “앞으로 내 입에서는 정치의 정(政)자도 올리지도 않고 국정원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며 국정원 개혁에 매진하겠다”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과 전화 소통을 중단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후보자로 임명해 주신 문재인 대통령님께 감사드리며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님과 이희호 여사님이 하염없이 떠오른다”고 감격해 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후보자. /연합뉴스
이인영, 본인·아들 군 면제... “상상력으로 남북관계 뚫겠다”
이 후보자는 본인과 배우자, 모친과 장남 등의 재산을 합쳐 총 10억758만원의 재산을 신고했다. 본인 명의의 재산은 2억3,853만원이다. 서울 구로구 사무실(143.80㎡) 전세권 3,000만원, 배기량 1,580㏄의 니로 하이브리드자동차 1,981만원, 예금 1억8,871만원 등이다.
배우자 명의의 재산은 서울 구로구 오류동 아파트(71.06㎡) 2억3,100만원, 예금 4억884만원 등 총 6억3,984만원을 신고했다. 모친 명의의 재산은 9,960만원, 장남 명의의 재산은 2,960만원이었다. 채무는 장남 명의로 3,000만원을 신고했다.
이 후보자는 무엇보다 대를 이은 군 면제로 주목을 받았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초대 의장으로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이 후보자는 1988년 11월 수형을 사유로 병역이 면제됐다. 그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집회시위법과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혐의로 1988년 6월 징역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2년형을 받았다가 같은 해 12월 특별사면됐다. 1994년 생인 그의 장남은 2016년 3월 척추관절병증으로 5급 전시근로역을 받고 면제 판정을 받았다.
이 후보자를 둘러싼 또 다른 논란거리는 오래 전부터 ‘친북’으로 지목된 그의 대북관이다. 이 후보자는 지난 6일 자신의 인사청문회 사무실인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본부 앞에서 가진 첫 기자회견에서 “정치가 가지는 장점 중 하나가 상상력”이라며 “상상의 자유와 소통할 수 있는 기회 등을 바탕으로 북한과의 관계에서 막힌 것도 뚫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한미워킹그룹을 통해 할 수 있는 일과 우리 스스로 판단해서 할 수 있는 일을 구분해서 해야 한다는 게 평소 내 생각”이라며 “제재 자체가 목적 아니고 그것을 통해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했던 게 한반도 평화 문제인 만큼 창의적 해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기현 미래통합당 의원은 이에 8일 페이스북에서 “우리나라와 미국의 접근법이 서로 엇박자를 내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며 “이인영 후보자, 통일부 장관 자격이 있느냐”고 비판했다.
서훈(오른쪽) 국가안보실장과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연합뉴스
서훈은 美비건에 북미 대화 재개 중요성 강조
박 후보자와 함께 문재인 정부 새 안보라인의 핵심 축으로 꼽히는 서훈 국가안보실장도 본격 행보를 시작했다. 청문회가 필요 없어 바로 임명된 그는 우선 지난 9일 비건 부장관을 만나 북미 간 대화 재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서 실장은 이 자리서 굳건한 한미동맹은 우리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임을 강조하며 한미 간 긴밀한 소통을 지속해 나가자고 제안했다. 비건 부장관도 한미동맹에 대한 미국 정부의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양측은 최근 북한 관련 동향에 대한 평가를 공유하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진전시키기 위한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서 실장은 비건 부장관이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해 전념하고 있음을 높이 평가하고, 관련 노력을 지속해 줄 것을 당부했다. 비건 부장관은 북미 간 대화 재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한편 한국과 긴밀한 공조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양측은 다양한 한미 양자 현안 및 국제 정세에 관해 논의했으며 방위비 분담금 협상을 조속히 마무리하자는 데도 뜻을 모았다.
지난 8일에는 기타무라 시게루 일본 국가안보국장과 25분간 통화하면서 한반도 정세를 포함한 역내 정세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美트럼프와 北김여정은 북미대화로 연일 ‘밀당’
한국에 새 외교안보 라인 진용이 서서히 갖춰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북미 대화와 관련해 각각 묘한 발언은 내놓아 관심을 끌었다. 미국과 북한이 자신이 원하는 협상을 얻기 위해 본격 ‘밀고 당기기’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의소리(VOA)와의 인터뷰에서 3차 북미정상회담과 관련한 질문을 받고 “나는 북한이 만나고 싶어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고, 우리도 물론 그렇게 할 것”이라고 답했다. 앵커가 “김정은과 또 한 번의 정상회담을 할 것이냐”고 거듭 질문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만약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3차 정상회담이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아마도”라며 “나는 김정은과 매우 좋은 관계를 맺고 있고, 아마도 그럴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자 이번엔 김여정이 지난 10일 직접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담화를 발표하고 “북한에 무익하다”며 북미정상회담 연내 개최 가능성을 일축했다. “때 없이 심심하면 여기저기서 심보 고약한 소리들을 내뱉고 우리에 대한 경제적 압박이나 군사적 위협 같은 쓸데없는 일에만 집념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두고 보아야 할 것”이라며 날 선 반응도 보였다. 다만 이 같은 입장을 “어디까지나 내 개인의 생각이기는 하지만”이라고 제한하면서 “두 수뇌의 판단과 결심에 따라 어떤 일이 돌연 일어날지 그 누구도 모른다”는 말을 덧붙여 가능성을 완전히 닫지 않았다. 대화 재개 추진에 앞서 미국의 군사 행동과 북한에 제시할 조건, 진정성 등을 두루 살핀 뒤 행동에 나서겠다는 의도가 엿보였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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