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도 못대는 '의무지출'이 절반 차지…'페이고' 도입해 재원확보 의무화해야

[대한민국 부채 리포트]<하> 국가부채 해법은
보조사업 87개 통폐합 했다지만
예산감축 규모는 3년간 4% 그쳐
마른수건 짜내는 구조조정 한계


정부는 매년 예산안을 제출할 때마다 강도 높은 ‘지출 구조조정’을 병행하겠다고 하지만 법을 개정하지 않는 이상 손댈 수 없는 의무 지출 비중은 2020년 기준 49.9%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태다. 총지출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로 사실상 정부가 약속하는 지출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기 힘든 구조인 셈이다. 이에 전문가들은 마른 수건 쥐어짜듯 지출 구조조정에 목을 매기보다는 근본적으로 지출계획을 짤 때 재원확보 방안도 함께 마련하도록 의무화하는 ‘페이고(paygo·수입지출균형원칙)’ 제도 도입 등을 본격 검토할 때가 됐다고 제언한다.


한국재정정보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의무지출은 지난 2012년 150조4,000억원에서 2018년 216조2,000억원까지 무려 65조8,000억원 증가했다. 의무지출이 총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012년 46.9%에서 2018년에는 절반을 넘어 50.4%까지 증가했다. 의무지출이란 기초연금이나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법으로 지급 의무가 명시돼 정부가 마음대로 규모를 줄일 수 없는 예산을 뜻한다.

손댈 수 없는 지출 규모는 점점 커지는데 지출 구조조정은 매년 이뤄지다 보니 사실상 의미 있는 지출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실제로 정부는 올해 평가대상 보조사업 가운데 87개 사업을 폐지·통폐합하는 식으로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밝혔다. 표면적 비율로 보면 3분의1 정도에 달하는 사업을 정리한다는 것이지만 실질적 예산 감축 효과를 뜯어보면 3,000억원 규모로 앞으로 3년간 4%에 불과하다. 황성현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는 나름대로 지출 구조조정을 한다고 하는데 이번 추경만 봐도 정말 낭비였던 사업을 잡아내기보다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에 어차피 쓸 수 없는 사업, 당장 효과가 나타나기 힘든 사업들을 제외하는 수준”이라며 “이미 행정 당국에서 말 안 되는 사업은 일찍이 정리하고 걸러내는 작업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효과적인 의무 지출 관리방안으로 페이고 제도 의무화 등의 대안을 꾸준히 제시하고 있다. 의무 지출 증가나 세입 감소를 유발하는 내용의 입법을 할 때는 재원조달 방안도 함께 제시하고 입법화되도록 의무화해 재정수지에 미치는 영향이 상쇄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경우 법안을 발의할 때 비용 추계서를 첨부하도록 해놨지만 이마저도 예외 사유가 많을 뿐 아니라 법안을 먼저 발의하고 비용 추계를 나중에 할 수 있어 허점이 많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의원 입법안의 통과율이 매우 높고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가속화하고 있는 국가에서는 법 시행 이후 쓰이게 될 재정지출과 그를 충당하기 위한 수입을 보전할 수 있는 방안까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재정학회장을 맡고 있는 박기백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미국은 경직성 예산이라도 한도를 정하고 재량적 지출의 경우도 지출 증가율을 정하며 페이고 원칙까지 활용하고 있다”며 “정부가 의지만 있으면 우리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현재는 기획재정부가 알아서 재정적자가 우려된다는 수준의 메시지만 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세종=하정연기자 ellenah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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