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에도 마스크 쓰기를 피해왔던 도널드 트럼프(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메릴랜드의 월터리드국립군의료원에서 처음으로 마스크를 착용한 채 공개 석상에 등장했다. 전날 미국의 일일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7만1,389명으로 최종 집계됐다. 미국에서 일일 확진자가 7만명을 넘어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는 11월 대통령선거를 겨냥해 최측근이면서 비선 참모인 로저 스톤을 감형하면서 사실상 사면해준 데 따른 후폭풍이 강하게 불고 있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이어 트럼프 대통령의 법치 훼손 논란이 다시 커지면서 이번 사건이 대선 이슈로도 부각하는 모양새다.
11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는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에 연루된 일부 참모들에게 비밀리에 사면을 약속했지만 이를 지키지는 않았다”며 “트럼프는 스톤을 감형하면서 닉슨이 가지 않으려고 한 곳까지 갔다”고 지적했다.
전날 밤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스톤의 형을 감형했다고 밝혔다. 케일리 매커내니 백악관 대변인은 “스톤은 ‘러시아 사기극’의 피해자”라며 “그는 이제 자유인”이라고 설명했다. 스톤은 러시아의 지난 2016년 미국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한 허위증언 및 증인 매수 등으로 1심에서 40개월의 징역형을 선고받고 14일부터 조지아주 연방교도소에서 복역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이를 나흘 앞두고 감형이 이뤄져 감옥행을 피할 수 있게 됐다.
스톤은 ‘더러운 사기꾼’으로 통한다. 1972년 ‘닉슨 대통령 재선위원회(CREEP)’의 사주를 받아 민주당 대선 주자 선거캠프에 침투할 스파이를 모집해 19세의 나이로 ‘워터게이트’ 사건의 최연소 수사 대상에 올랐다. 2007년에는 정적이었던 엘리엇 스피처 뉴욕주지사를 불법 매춘으로 엮어 낙마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비선 참모인 로저 스톤이 지난 2월 20일 워싱턴DC 연방지방법원에서 선고 공판을 마친 뒤 법원 앞에서 미소짓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현지시간) ‘러시아 스캔들’ 관련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스톤에 대해 감형 결정을 내렸다./EPA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통령 출마를 권하고 2016년 ‘러스트벨트(낙후지역)’ 공략 아이디어를 낸 것도 스톤이다. ‘러시아 스캔들’의 한복판에도 그가 있었다. 미 검찰은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불리한 내용의 e메일을 폭로한 위키리크스와 트럼프 캠프 간 연락책을 스톤이 맡았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스톤과 수차례 통화했지만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답변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스톤이 트럼프를 대신해 실형을 받았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면은 스톤이 보인 충성심 이후에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40년 지기이면서 자신을 배반하지 않은 스톤을 구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선거전략을 본격적으로 함께 짤 수 있게 됐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지지율이 두자릿수 이상 뒤지는 상황을 반전시키기 위해서는 스톤이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11일(현지시간) “스톤은 마녀사냥의 피해자”라며 “사람들이 (감형을) 기뻐하고 있다. 그들은 정의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스톤에 대한 감형은 트럼프 대통령의 선거 ‘올인’ 전략과 맞물린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재선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다한다는 입장이다. 당장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월터리드국립군의료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서 마스크를 착용했다. 지금까지 마스크를 거부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공식 석상에서 마스크를 쓴 것은 처음이다.
중국을 향한 압박도 같은 맥락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미중 관계가 손상됐다”며 1단계 무역합의는 언급하지 않은 채 “지금은 2단계 무역협상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팜벨트(중부 농업지대)’ 공략을 위한 1단계 합의는 유지하면서 코로나19 대응 실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중국 때리기도 계속 하겠다는 뜻이다. 미국의 코로나19 일일 신규 환자는 7만명을 넘었고 텍사스와 플로리다 등 ‘선벨트’를 중심으로 사망자가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정치권의 반발은 거세다. 민주당은 “법치모독” “마피아 두목”이라고 비난했다. 반(反)트럼프 인사인 공화당 소속의 밋 롬니 상원 의원은 “전례가 없는 역사적 부패”라고 단언했고 팻 툼니 공화당 상원 의원도 “이번 일은 실수”라고 우려했다.
정치적 후폭풍을 염려한 백악관 내부 인사들도 스톤 감형에 반대했다. NBC방송에 따르면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스톤에게 면죄부를 주지 말 것을 권고했다. 이 때문에 스톤의 감형이 또 다른 선거 이슈가 되고 있다. 바이든 전 부통령은 “미국 국민이 투표를 통해 목소리를 낼 때만 그를 멈출 수 있다”며 투표를 통한 심판론을 제기했다. /뉴욕=김영필특파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