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 분야 유망 스타트업 A사는 최근 황당한 일을 당했다. 회사에 불만을 품은 한 직원이 퇴사하면서 공용으로 쓰던 클라우드에 들어 있던 업무관련 파일들을 전부 지워버리고 나가버린 것이다. A사는 해당 직원을 고소했지만 경찰 등을 오가느라 업무 차질은 물론 믿었던 직원에 대한 배신 등에 대한 유무형의 피해를 입었다. 대기업의 경우 체계적인 사내 법률팀이 대응을 하겠지만, 직원이 5명 안팎인 스타트업의 겨우 언감생심이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스타트업들이 크고 작은 법적 분쟁에 시달리면서 사업이나 기술 개발 등에 차질을 빚고 있는 사례가 늘고 있다. A사와 같이 직원들의 일탈도 문제가 되지만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지분 문제나 외부 개별 용역 분쟁 등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자와 맺은 ‘옵션’ 조항 때문에 경영권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스타트업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스타트업 B사는 기존 기관투자가와 정해 놓은 실적 조건에 발목이 잡혔다. 첫 투자를 받을 때 실적이 미리 정한 기준보다 떨어지면 2차 유상 증자(자본확충)때 투자자가 창업자보다 더 많은 지분을 가져갈 수 있도록 옵션조항을 넣어 놨는데 현실이 돼 버린 것이다. 기관투자자가 옵션대로 하게 되면 창업자는 한 순간에 대주주 자리를 내놔야 하는 처지다. 민인기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대기업과 달리 초기 스타트업은 법적 문제에 대응할 인력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규모가 커 갈수록 다양한 분쟁들이 생겨날 수 밖에 없다”며 “초기 투자를 받을 때 투자조건 등을 꼼꼼히 따져보지 않으면 나중에 지분 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스타트업 분야 법적 분쟁을 전문으로 하는 법무법인 비트의 최성호 대표변호사 역시 “올 상반기 스타트업 법률 자문 의뢰 건 수가 전년 동기 대비 30% 가량 늘었다”고 말했다.
외주 용역 관련 분쟁도 수시로 벌어지고 있다. 스타트업은 내부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외부 업체들과 협력을 많이 할 수 밖에 없는데 계약 조건 등을 허술하게 했다가 나중에 소송으로 번지는 사례가 수두룩하다. 최 변호사는 “외주 개발사에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달라고 했는데 요청 사항과 실제 결과물이 달라 소송까지 간 경우도 있다”며 “다행히 승소를 한다고 해도 송사로 인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날릴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내부 직원들 통제가 안돼 소송으로 비화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게 스타트업 전문 변호사들의 한결 같은 목소리다. 창업한 지 1년 남짓한 중소기업 C사는 직원 2명에게 영업을 전담시켰는데 이들이 퇴사한 후 같은 사업으로 창업을 하는 바람에 결국 폐업했다. 비슷한 업체를 창업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기존 영업망을 그대로 빼가면서 C사는 하루 아침에 망해버렸다. 정진숙 아미쿠스렉스 변호사는 “근로계약을 할 때 영업비밀 등 침해사항에 대한 위약금 조항이 있었다면 직원들이 퇴사해 비슷한 사업을 창업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며 “C사는 채용계약서에 관련 조항이 없어 직원들이 자유롭게 영업노하우를 탈취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에서는 볼 수 없는 법적 분쟁이 스타트업에게 자주 발생하는 것은 내부 통제가 부족한 데다 근로계약 등에 대한 법률전문가 등에 대한 정부 지원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스타트업계 관계자는 “창업을 한 후 기술개발과 사업을 위해 전력 질주를 해도 모자랄 판이데 법적 문제가 터져 시간과 돈을 허비해야 하는 일이 잦다”며 “정부가 법률 컨설팅에 대한 지원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호현기자 greenligh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