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도 "전세대출 헷갈려요"…55쪽 매뉴얼 시행 하루전 배포

대출수요자 규제 문의 쏟아지는데
가이드라인 없어 상담업무에 지장
반년새 굵직한 정책만 세번째 변경
전문가들조차 "따라잡기 어려워…
확실하게 아는 은행원 거의 없을것"


6·17 부동산 대책에 따라 지난 10일부터 강도 높은 전세대출 규제가 시행된 가운데 대출 수요자들은 물론 시행일 직전에야 가이드라인을 받아든 시중은행들도 혼란을 수습하느라 여념이 없는 모습이다. 일선 대출 업무를 집행하는 은행에는 대책 발표 직후부터 저마다의 사정을 토로하는 수요자들의 문의가 쏟아졌지만 각양각색의 사례에 새 규제가 예외 없이 적용되는지에 대해서는 이제껏 은행들도 확답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반년 새에만 굵직한 부동산 대책이 세 차례 발표되면서 전문가들조차 바뀌는 규제를 따라잡기 어려운 실정이다.

은행들은 최근에야 금융당국으로부터 55쪽에 달하는 질의응답 자료를 받아 사례별 고객 응대에 나섰지만 내용이 방대한데다 누더기 규제로 실무자들조차 내용 파악이 어려워 실수요자의 불만을 불식시키기에는 역부족일 것이라는 우려가 여전하다. 정부가 과거 잔금대출 규제에 대해서도 경과조치를 적용한 7·10 보완대책을 추가 발표하면서 또 다른 불만이 제기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들은 최근 주택금융공사로부터 6·17 주택시장 안정대책의 전세대출·보증 규제 조치와 관련해 55쪽에 달하는 분량의 질의응답(Q&A) 자료를 전달받았다. 은행권은 지난달 대책이 발표된 후 구체적인 적용 사례에 대한 대출 실무자들의 질의를 모아 이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금융당국에 요청했다.


은행들은 대부분 시행일 하루 전날에 Q&A 자료를 받았다. 내용이 워낙 방대해 본점 여신담당부서가 이를 토대로 다시 내부 업무처리 지침을 만들어 일선 영업점 직원들에게 배포했다. 일부 은행은 시행일 당일 오전까지도 내부 지침이 전달되지 않아 영업점 직원들이 본점에 일일이 문의하느라 혼란을 겪은 것으로 알려졌다. A은행 관계자는 “처음 정부가 발표한 내용만으로는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할 수 없어 사례별 명확한 해석을 기다리느라 이제껏 고객 응대에 어려움이 있었다”며 “이번 자료를 토대로 지침을 만들기는 했지만 계속된 대책 발표로 대출 규제가 ‘누더기’가 돼 은행원 중에서도 확실하게 내용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B은행 관계자는 “발생 가능한 사례에 대해 최대한 세세하게 유권해석을 요청했지만 현실에서는 ‘갭투자’와 실수요를 딱 잘라 구분하기 쉽지 않아 앞으로 애매한 사례는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고 토로했다.

이번 대출 규제의 핵심은 수요자가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에서 시가 3억원을 초과하는 ‘규제 대상 아파트’를 구입한 경우 전세대출 이용을 제한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시행일인 이달 10일 이후에 규제 대상 아파트를 취득했다면 현재 이용 중인 전세대출은 기한 연장을 받을 수 없거나 즉시 갚아야 한다. 부동산담보신탁 등을 통해 대상 아파트를 취득한 경우도 마찬가지다.

특히 이번에 배포된 Q&A 자료에 따르면 실거주 사유를 인정 받고 전세대출을 이용하며 전셋집에 살던 사람이 전세기간이 끝난 뒤 실제 입주할 목적으로 규제 대상 아파트를 샀다가 다시 그 아파트를 팔았다면 처분이 확인되더라도 전세대출 기한 연장을 받을 수 없다. 실거주 사유로 전세대출 즉시 회수를 유예받고 있던 사람이 3억원 이상 아파트를 취득한 것 자체가 약속을 어긴 것이기 때문에 처분한 이유와 관계없이 전세대출뿐 아니라 향후 3년간 주택 관련 대출을 모두 제한한다. 전세대출이 끝나고 입주할 아파트가 없더라도 전세대출 요건을 어긴 경우 예외 없이 규제 대상으로 보겠다는 얘기다. C은행의 주택대출 담당자는 “부득이한 사정으로 전세 대출자가 집을 매각한 경우에도 무조건 단기차익을 노린 ‘갭투자’로 보는 것”이라며 “사람마다 다양한 상황이 있을 텐데 일괄적으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은 다소 과한 조치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번 대책에 따른 규제 대상 아파트의 가격 평가 기준 시점이 지난해 발표된 12·16 대책에 따른 시가 9억원 초과 고가주택과 달라진 점도 주의해야 할 부분이다. Q&A 자료에 따르면 고가주택의 경우 대출 신청일을 기준으로 주택 가격을 평가하지만 규제 대상 아파트는 대출 신청을 언제 하는지와 관계없이 취득 시점에서의 가격이 기준이 된다. 즉 규제 시행일 이후 전세대출을 새로 받거나 기한 연장을 신청하려는 사람이 3억원 이상 규제 대상 아파트를 갖고 있더라도 취득 당시 가격이 3억원 이하였다면 대출 이용에 문제가 없다. A은행 관계자는 “수요자 입장에서는 다소 완화된 부분이지만 직접 주택 가격을 평가해야 하는 은행원들로서는 헷갈릴 수 있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갑자기 규제지역으로 편입됐거나 규제 문턱이 높아져 계획한 잔금대출에 어려움을 겪는 수요자들을 위해 정부가 10일 발표한 경과조치 보완책도 현장에서는 일부 혼란이 나올 수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정부는 이번 6·17 대책으로 투기과열지구로 지정된 인천 검단·송도 등은 물론 과거에 규제지역이 된 수원 권선구, 용인 수지구 등의 수분양자도 이전의 주택담보인정비율(LTV)대로 잔금대출을 받을 수 있게 했다. 다만 이미 입주가 끝나 잔금대출을 받은 경우는 제외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규제 강화에 따라 당시 줄어든 LTV대로 잔금대출을 적게 받았던 사람들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할 소지도 있다”고 전했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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