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상호 금융연구원장이 13일 서울 명동 은행회관 집무실에서 가진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과잉 유동성이 생산적인 투자처로 흘러가려면 민간 기업의 손실 위험을 덜어줘야 한다”며 정부와 민간의 매칭펀드 조성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성형주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쇼크 극복을 위해 대규모 재정금융정책을 펴면서 과잉 유동성에 따른 거품 경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버블 후유증을 막기 위해 생산적 투자처로 유동성의 물꼬를 열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손상호 금융연구원장은 “코로나19 국면의 불확실성 속에서 민간 기업이 신산업에 투자하게 하려면 손실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며 “정부와 민간이 공동으로 ‘매칭펀드’를 조성해 위험을 덜어줄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손 원장은 이어 “코로나19가 2·3차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으로 길어지면 눌려 있던 부실이 한꺼번에 터질 수 있다”며 “금융회사들이 선제적으로 자본 확충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이은 사모펀드 사고에 대해서는 “양적 성과에 치우치다 생긴 결과”라며 “자본시장 육성이 늦어지더라도 사모펀드 진입 기준을 5억원 이상으로 더 높여 신뢰를 먼저 회복해야 한다”고 밝혔다. 손 원장을 13일 만나 과잉 유동성 등 시장 전반의 흐름에 대해 들어봤다.
-위기를 넘기 위해 돈을 많이 풀면서 과잉 유동성이 문제가 되고 있는데.
△지금의 유동성 문제는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부터 10년 넘게 응축돼 거품이 만들어져 생긴 것이다. 당시 푼 돈이 생산적 투자로 다 가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자산시장에 흘러갔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위기를 넘기 위해 기업들의 피해 경중 등을 가릴 겨를 없이 돈을 풀었다. 어려운 업종이나 사람들에게 많이 투입되기는 했지만 그렇지 않은 자금이 자산시장으로 가면서 버블이 더 커졌다.
-돈이 생산적 투자처로 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실물 현장의 투자는 플랫폼 비즈니스나 디지털 쪽에서 이뤄지는 것이 많다. 전통 제조업은 협력업체부터 비용이 많이 투입되지만 플랫폼 경제는 소프트웨어 중심이어서 크게 들어갈 것이 없다. 당연히 돈이 생각만큼 생산 쪽에 흘러가지 않고 남아돌게 된다. 그러면 이 자금이 결국 자산시장으로 흘러가게 된다. 산업의 패러다임은 달라지는데 이를 감안하지 않으니 유동성 과잉이 생기는 것이다.
-거품 경제의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안은 무엇인가.
△위기상황에서 확대 재정금융정책의 부작용은 불가피하다. 일종의 비용이다. 힘이 들어도 생산적 투자로 가도록 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 분야의 시장 규모가 커지고 있는데 돈이 많은 일부 대기업을 빼고는 불확실성이 높아 투자를 주저한다. 이를 해결하려면 민간 기업이 신사업에 나설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민간의 신사업 진출에 대한 위험을 줄여주는 것이 열쇠다. 정부가 공공과 민간을 매칭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방법이 있다. 보증 등의 방식으로 민간과 매칭펀드를 만들면 돈을 적게 들이면서 효과를 볼 수 있다. 위기에서는 새로운 방법으로 신산업의 문을 열어줘야 한다.
-자산시장의 거품이 금융시장의 부실을 키우지 않을까.
△빚이 많아지면 원리금 상환액이 늘어나는데 기업의 매출이나 가계소득이 받쳐주지 못하면 디폴트(부도)에 내몰릴 수 있다. 구조조정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다. 문제는 코로나19로 단기간에 매출이나 소득이 급격하게 줄면 사회적 문제로 확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전에 이를 막아야 하는데 금융회사는 기업의 매출 등 재무제표를 보면서 부실에 대비할 수 있지만 정부는 그렇지 못하다. 나랏빚은 봇물 터지면 걷잡을 수 없다. 재정건전화법이든 재정준칙이든 통제하는 기능이 필요하다.
-코로나19가 길어질수록 부실은 훨씬 커지지 않을까.
△팬데믹이 길어질수록 피해를 입는 업종이 많아질 것이다. 사람들이 실직하면 소비를 안 하고 제조업에 2차 피해가 간다. 이런 흐름이 경제 전체로 확산하면 경제학의 ‘승수효과’가 역으로 생긴다. 팬데믹은 3·4·5차로 중첩돼 닥칠 가능성이 높은데 경제는 그만큼 변동성이 커질 것이다. 적응력이 생길 수 있겠지만 반복적으로 팬데믹의 충격을 받으면 골병이 든다. 부실 문제는 더욱 그렇다. 재정을 무한정 풀 수는 없다. 그러면 눌려 있던 부실이 수면 위로 나올 것이다. 부실이 동시다발적으로 튀어나오면 감당할 수 없다. 그렇다고 계속 눌러놓을 수도 없다. 부실을 조금씩 걷어내야 한다. 팬데믹이 길어질수록 부실이 커지고 범위가 넓어질 텐데, 이를 정교하게 수술하는 것이 가장 큰 관건이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가장 걱정되는 분야가 아무래도 자영업인데.
△코로나19 직후 숙박·여행업 등의 매출이 30%가량 줄었다. 요식업체의 절반이 없어진다는 얘기도 있었지만 그것은 말이 안 된다. 10% 정도는 문을 닫을 것이다. 걱정은 항공 부문인데, 관련 업종에 전염될 것이다. 내구소비재 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이 와중에도 잘되는 곳은 계속 잘된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이나 배달업체 등이 빨리 성장하고 전통 업종은 쇠퇴하고 있다. 패러다임의 변화로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이뤄지고 자영업에도 새로운 균형이 생기고 있다.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폐업하는 이들을 재창업이나 재교육 등을 통해 새 환경에 적응하도록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컨설팅이 필요하다.
-가계대출의 부실은 괜찮을까.
△신용대출이 늘고 있지만 은행들이 10등급 중 3등급 이내가 아니면 대출을 제한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관건은 부동산 가격의 급락과 담보대출의 부실화 가능성이다. 하지만 유동성이 풍부한 상황에서 집값이 단시일 내 확 떨어질 확률은 낮다. 경기 부진으로 금리가 치고 올라갈 가능성도 높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당분간 가계대출이 경제 전반에 문제를 일으키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다만 저소득층이나 매출이 일어나지 않는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출 원리금을 못 갚을 수도 있다. 시스템 붕괴까지는 아니겠지만 이들의 대출이 부실화하지 않도록 정책적으로 잘 관리해야 한다.
-집값 급등에 따른 금융 시스템의 문제는 적다는 뜻인데. 상업용 부동산은 다르지 않나.
△정부에서 주택 대출 관련 규제를 워낙 세게 하고 있다. 금융기관들이 쉽게 부실화하지 않도록 방비해놓은 것이다. 부동산시장이 언젠가는 조정되겠지만 글로벌 금융위기처럼 국가 경제에 큰 충격을 주는 일이 없으면 주택담보대출로 인한 건전성 문제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다만 상업용 부동산은 주택보다 대출 리스크가 더 크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음식과 숙박 등의 상업용 부동산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전체 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지만 다른 부실과 합쳐 터지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상업용 부동산의 공실률과 현금 흐름을 점검해 문제가 있는 곳은 임대용 주거단지로 전환하는 방법을 선제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정부도 관련 규제를 유연하게 정비할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는 스트레스테스트 결과 일부 은행의 건전성에 문제가 드러났다. 국내 금융사는 어떤가.
△1·4분기까지는 괜찮았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이 전기 대비 0.54% 하락에 그쳤고 부실채권비율도 0.01% 상승에 머물렀다. 다만 금융사의 부실은 기업이나 가계에 비해 6개월에서 최대 1년 후 나타난다. 지금까지는 건전성 피해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도 하반기가 되면 가시적으로 나올 것이다. 금융회사들이 지금부터 선제적으로 대비해야 한다.
-금융사들의 자본 확충이 필요하다는 뜻인가.
△은행의 재무제표가 실물경제보다 후행하니 연말까지는 일반 기업보다 좋게 나올 것이다. 충당금을 더 쌓을 여력이 있다. 금융회사들이 4·4분기에 특별충당금을 적립할 수 있게 당국이 허용해줄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부실을 감안해 지금부터 후순위채 발행 등을 통해 자본 확충에 나서야 한다. 2금융권은 아직 부실이 많지 않지만 대출 리스크가 크고 담보의 질이 좋지 않기 때문에 보다 면밀하게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사모펀드에서 계속 사고가 터지고 있다. 개별 금융사의 문제인가, 시스템의 문제인가.
△개별 금융사의 일탈과 시스템 결함이 결합된 것이다. 최근 사고는 유가증권에 단기로 투자한 것들이다. 대부분 시가 평가가 되지 않고 유동성도 떨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불투명성이 크고 운용사의 사기나 배임이 많이 일어난다. 포트폴리오 보고나 공시도 취약하다. 미국 등도 여기에서 사고가 많이 터진다. 다만 사모펀드 가입 기준이 10억원 이상으로 기관투자가 중심이다. 그래서 시장 규율이 어느 정도 작동한다. 우리는 자본시장 육성을 위해 5년 전부터 1억원까지 기준을 낮췄다. 양적 성과에 너무 집착한 결과 사고가 생긴 것이다.
-당국에서는 진입장벽을 다시 높였다. 시장 육성을 막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데.
△진입 기준을 1억원에서 3억원으로 올렸는데 5억원 정도로 더 높여서 기관투자가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시장이 자체 규율과 자정 기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운용사만 230개에 달하고 보고도 제대로 하지 않아 감독이 쉽지 않다. 자본시장 육성 속도가 늦어지더라도 사고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자본시장은 사고를 우선 막아야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김영기 논설위원 young@sedaily.com
1957년 인천에서 태어나 경기고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산업연구원 산업금융팀장에서 1995년 금융연구원으로 옮겼다. 2008년 6월부터 1년여 동안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를 맡았으며 이후 금융연구원으로 돌아와 2018년 금융연구원장에 취임했다. 금융감독위원회 은행경영평가위원과 자문관, 금융발전심의회 위원, 한국재무학회 이사, 한국금융학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