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계산 출렁다리는 산 중턱 60m 지점에 걸린 다리로 출렁다리 중에서는 국내에서 가장 긴 270m의 전장을 자랑한다.
어둑해질 무렵 순창에 도착해 허기를 채우고 허름한 여관에 들어 눈을 붙였다. 새벽에 눈을 떠 뒤척거리다 장비를 챙겨 나선 첫 목적지는 순창의 3대 명산으로 불리는 채계산이다. 차를 몰고 가는 도중에 동이 터 오르더니 어느새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이기 시작했다.
채계산 출렁다리는 산 중턱 60m 지점에 걸린 다리로 출렁다리 중에서는 국내에서 가장 긴 270m의 전장을 자랑한다. 지난봄에 개통된 출렁다리는 모든 설비가 새로 조성돼 산뜻했다. 주차장은 아직 마무리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체계산 출렁다리.
산책로 초입에서부터 데크로 만든 계단이 끊임없이 산 정상부로 연결돼 있어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숨이 차올랐다. 하지만 산이 높지는 않아 이내 다리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너무 일찍 온 탓에 다리 진입로는 쇠사슬로 묶여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다. 하는 수없이 다리 근처를 기웃거리다 다시 계단을 오르니 전망대가 나타났다. 전망대 왼편으로는 출렁다리가, 오른편으로 넓은 평야에 논과 밭이 펼쳐져 있다. 전망대를 둘러보고 다시 오르기 시작하니 곧이어 산 정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산정상에는 1,104계단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는데 숫자가 주는 압박감에 비해 오르기는 어렵지 않은 편이다. 채계산이라는 이름은 마치 수만권의 책을 켜켜이 쌓아놓은 형상을 닮아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채계산은 회문산·강천산과 함께 순창의 3대 명산으로 꼽히는데 높이는 해발 342m에 불과하지만 주위에 시계를 가리는 장애물이 없어 전망이 빼어나다.
만일사는 우리나라에서 고추장이라는 음식이 기원한 곳이다.
고추장의 고향 순창에 온 김에 만일사까지 발을 뻗기로 했다. 만일사는 우리나라에서 고추장이라는 음식이 기원한 곳으로 알려졌다. 백제 무왕(600~641) 때 창건한 만일사는 여말에 무학대사가 중수했다. 절 안에는 조그마한 고추장박물관이 있는데 안에 들어가 보니 안내문에 ‘조선왕조실록에 여말 이성계가 남원 운봉에서는 경상도를 거쳐 올라오는 왜구를 물리치고, 만일사에 기거하는 무학대사를 만나기 위해 순창에 들렀을 때 한 농가에서 고추장의 원조 격인 ‘초시’를 먹어보고 그 맛을 잊지 못해 순창 현감에게 진상하도록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다’며 ‘아울러 조선의 왕 중 고추장을 가장 좋아했던 왕은 정조로 입맛이 없을 때마다 고추장을 찾았다는 기록이 정조실록에 올라 있다’고 적혀 있다. 고추장의 산실이라고 하기에는 암자보다 약간 큰 절에 불과한 만일사의 마당 한구석 장독대에 줄지어 선 항아리에서 정겨움이 느껴진다.
훈몽재는 정치가이자 가사문학의 대가였던 송강 정철을 비롯해 조희문, 양자징, 기효간, 변성온 등 당대 거유들을 배출한 해동 유학 발전의 산실이었다.
귀경길에는 조선시대 거유 하서 김인후가 세웠던 훈몽재에 들러보기로 했다. 하서 김인후(1510~1560)는 인종의 스승으로 인종이 갑자기 승하하자 명종 3년에 순창 점암촌에 은거하면서 백방산 자락에 강학당을 지었는데 이곳이 바로 훈몽재다. 정조가 친히 존립 여부를 물었을 정도로 유학을 창도한 곳이었다. 정치가이자 가사문학의 대가였던 송강 정철을 비롯해 조희문·양자징·기효간·변성온 등 당대 거유들을 배출한 해동 유학 발전의 산실이기도 했다. 하서 김인후는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루던 학자로 지난 1796년 정조에 의해 호남출신 유학자로는 유일하게 문묘에 배향된 바 있다.
2005년 전주대학교박물관팀이 원래 훈몽재터(현재 훈몽재의 뒤쪽)에서 붓솔·기와류·자기류·철제품·석제품 등을 발굴했으며 이를 토대로 순창군이 2003년부터 추진한 복원사업을 통해 2009년 지금의 모습으로 거듭났다. 대한민국 초대·2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가 직계 후손이며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김병로의 손자다.
순창미소식당의 연잎밥.
남도 여행에서 ‘맛’도 빼놓을 수 없다. 순창은 고추장이 유명한 고장인 만큼 맛집도 적지 않다. 그중 현지인들에게만 알려진 맛집인 순창미소식당을 추천할 만하다. 연근 농사를 짓고 다슬기를 채취하는 등 직접 식자재를 조달한다고 한다. 대표 메뉴는 연잎밥인데 식당주인 김은희씨는 “처음부터 연잎밥을 하지는 않았다”며 “건강이 좋지 않았을 때 스님에게 연잎밥을 추천받아 건강을 회복한 후 본격적으로 조리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연잎밥에는 작약·복령·콩·귀리·조·수수·찹쌀 등 스물일곱 가지 재료가 들어가는데 연잎을 여는 순간 향기로운 냄새가 올라오며 밥만으로도 풍미가 탁월하다. 점심은 예약을 해야 먹을 수 있고 저녁도 예약하고 가는 게 안전하다. 연잎밥고추장정식과 연잎보리굴비·연잎콩국수·다슬기수제비 등 맛깔스러운 음식의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글·사진(순창)=우현석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