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재 화첩도 유찰...보물은 왜 자꾸 경매에 나와 번번이 유찰되나?

15일 케이옥션 경매서 시작가 50억원 유찰
5월 간송 불상 이어 보물 주인찾기 또 실패
코로나 불경기에 '보물' 과도한 관심 부담 요인
소장자 세대교체와 상속세 면제 메리트에
재단 재정난 등 영향으로 보물 매각은 늘어
사유 문화재 거래가능...기부·후원 문화 필요

시작가 50억원에 경매에 나왔으나 유찰된 보물 제1796호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 중 해악팔경 부분. /사진제공=케이옥션

보물 제1796호로 지정된 겸재 정선(1675~1759)의 화첩이 시작가 50억원에 경매에 나왔으나 유찰됐다.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은 15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사옥에서 열린 메이저 경매에 169번 마지막 출품작으로 나왔다. 하지만 시작가 50억원에 출품된 이 ‘보물’은 단 한 명의 응찰자도 없이 유찰됐다. 지난 2015년 12월 서울옥션 경매에서 35억2,000만원에 팔린 보물 1210호 ‘청량산괘불탱’의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경제 불확실성 속에 높은 가격이 부담이 된 데다, ‘보물’ 거래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오히려 응찰 심리를 위축시켰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앞서 지난 5월 27일에도 간송미술관이 소장한 보물 제 284호, 285호 불상이 각각 시작가 15억원에 경매에 나왔으나 유찰된 바 있다

그렇다면 최근 들어 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이 왜 이렇게 경매에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작가 50억원에 경매에 나왔으나 유찰된 보물 제1796호 ‘정선필 해악팔경 및 송유팔현도 화첩’ 중 송유팔현도 부분. /사진제공=케이옥션

문화재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연 평균 4만5,000건 가량 거래된 문화재 가운데 보물은 18건이었다. 국내 최대 경매회사인 서울옥션이 지난 20여 년간 거래성사 시킨 보물은 21점, 케이옥션은 4점이었다. 이번에 유찰된 ‘겸재 화첩’의 소장자는 국보·보물 등 문화재를 다량 소장한 우학문화재단이고 관리자는 용인대박물관인데, 지난해 6월 서울옥션에서 12억5,000만원에 팔린 보물 ‘감로탱화’의 원 소장처도 이곳이었다.

‘보물’이 거듭 경매에 나오는 이유는 크게 △소장철학의 변화 △상속세 면제 △재정 문제 등으로 분석된다. 해당 문화재를 수집한 선대 소장가와 이를 계승해 관리하는 후대 소장가의 가치관 차이가 보물을 내놓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간송 전형필이 수집해 흩어지지 않게 간직하기를 바랐던 문화재들이 경매에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고미술뿐만 아니라 근현대미술 역시 작품을 공들여 모았던 1세대 컬렉터에게는 의미가 컸지만 2, 3대로 이어지면서 취향의 변화와 함께 소장 여부가 바뀌게 된다.

게다가 물려받은 문화재의 경우 보물 등 지정문화재라면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문화재보호법’의 상속세 및 증여세 제12조에 따르면 국가지정문화재 및 시·도지정문화재는 상속세가 비과세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문화재 관계자는 “주요 문화재 소장가들 중 극히 일부이기는 하나, 정부의 관리·감독을 간섭으로 여겨 평생 문화재지정을 피해오다 상속과 유산 분할을 앞두고 뒤늦게 문화재 지정 여부를 검토해 달라고 적극 나서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소장가의 재정문제도 문화재 매매를 부추긴다. 특히 문화재단이 주요 문화재를 소장한 경우 경영난 등을 이유로 매각하는 경우가 있다. 최근 보물 불상을 경매에 내놓은 간송미술관이나 이번 겸재 화첩을 내놓은 우학문화재단 등은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재단 운영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보물’을 경매에 내놓는 것이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국가지정문화재는 국가의 관리·감독이 필요한 역사적·예술적 가치가 높은 유물을 뜻하나 해외 반출만 아니라면 개인 소장품인 경우 거래 내역을 문화재청에 신고하고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다.

이광표 서원대 박물관학 문화유산학 교수는 “국가지정문화재가 너무 자주 경매에 나오는 게 이미지상 좋지 않으나 비판적으로 볼 일은 아니다” 라며 “다만 세대를 거듭하면서 귀한 유물에 대한 소장 개념이 바뀌는 점, 고미술이 저평가돼 투자가치에 대한 기대수준이 낮은 점은 안타깝다”고 말했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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