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미친 제왕' 트럼프의 치명적 망상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폴 크루그먼

우리는 서로에 관해 알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 모두 타이타닉호에 갇혀버린 승객들과 다를 바 없다는 느낌이 든다. 그 당시의 실제상황과 다른 점이 있다면 우리가 타고 있는 배의 선장은 충돌할 것을 뻔히 알면서 눈앞의 거대한 빙하를 향해 “직진하라”고 지시하는 미치광이라는 점이다. 게다가 비겁한 선원들은 승객들을 구하기 위해 항명하기는커녕 행여 선장의 눈에 날까 두려워 침묵으로 일관한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사회적 거리두기 완화와 식당, 술집 등의 영업재개를 골자로 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선벨트 지역 공화당 주지사들의 조치는 참혹한 결과를 피해갈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를 낳았다.

그러나 섣부른 경제활동 재개는 전문가들이 경고했던 것들을 만들고 말았다. 지난달 초 이미 250만 건을 돌파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일일 확진 건수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조기 봉쇄해제에 나섰던 일부 주의 병원들은 진료체계 붕괴를 우려한다. 코로나19의 미국 내 진앙지인 북동부지역에서 바이러스 확산 추세가 꺾인 덕에 전국의 사망자 수는 줄어들고는 있지만 선벨트 지역에선 여전히 가파른 상승곡선이 이어지고 있다. 더욱 우려스런 사실은 바이러스 확산이 언제쯤 정점에 도달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대통령과 정당이라면 이 같은 상황에 충격을 받아야 마땅하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결정임을 시인하고 정책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의료전문가들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꿈쩍도 않고 있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배척하는데 이골이 난 그는 이번 주에도 청개구리 행보를 이어갔다. 질병예방통제센터(CDC)가 마련한 안전지침을 무시한 채 각급 학교의 완전한 개학을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트럼프주의자들은 아직도 코로나19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2020년 초반까지만 해도 트럼프는 정치적으로 안락한 시기를 보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의 전임자들은 취임 후 첫 3년간 외부적 요인에 의한 어려운 도전에 직면했다. 예를 들어 버락 오바마는 전임자로부터 금융위기로 쑥밭이 된 경제를 물려받았다. 조지 W 부시는 9·11 테러참사를 수습해야 했고, 빌 클리턴은 높은 실업률을 해소해야 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오바마로부터 장기적 경제 확장기의 한복판에 위치한 평화로운 국가를 넘겨받았다.

코로나19는 취임 후 3년 만에 트럼프가 처음으로 맞닥뜨린 위기다. 다른 대통령이었다면 팬데믹을 정면돌파해야 할 위기로 규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달리는 열차의 지붕 위에 앉아 있으면서도 마치 자신이 기관차를 직접 운전하고 있는 듯이 행동하던 지난 2월의 상황으로 우리를 몰아가며 5개월을 흘려 보냈다.

정치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미국인의 생명을 희생시키는 냉소적 결정이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서둘러 재개한 경제활동이 5월과 6월 두 달간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낸 것은 맞지만 유권자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올해의 화두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가 아니다. ‘문제는 바이러스’다. 게다가 코로나19 재확산이 경제를 멈춰 세우고 있다.

‘전문가들을 무시하고, 전속 직진하라’는 전략은 어리석을 뿐 아니라 부도덕하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전략을 재고하기는커녕 자신이 빠진 구덩이를 더욱 깊게 파고 있다. 그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하지 않을 것이 뻔함에도 인종주의 발언의 수위를 높여간다. 코로나19로 병원마다 입원환자들이 넘쳐나는 상황을 외면한 채 “감염 건수가 치솟는 것은 진단검사 확대에 따른 필연적 결과”라는 헛소리를 되풀이한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트럼프의 임기는 6개월 남아있다. 팬데믹 위기상황이 제아무리 악화한다 해도 그는 남은 임기 중 절대로 기존의 노선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파선을 작정한 미친 선장에게 마구잡이로 휘둘리는 승객들이다.

연방주의는 우리의 우군이다. 연방주의 체제에서 트럼프는 학교 개학과 같은 사안에 사실상 직접적인 권한을 행사하지 못한다. 게다가 비록 전부는 아니지만 적지 않은 이성적인 주지사들이 코로나를 억제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뉴저지와 미시간에서는 산불처럼 번지는 인접주 플로리다의 코로나바이러스 탓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확산을 막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쏟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더 많은 미국인들이 코로나로 목숨을 잃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조 바이든이 대통령에 당선된다면, 12년 전 오바마가 그랬듯 깊은 위기에 빠진 국가의 방향타를 쥐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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