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금통위는 이날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사진제공=한은
한국은행이 올해 성장률 전망을 3주 만에 바꿀 정도로 수출 등 경제지표가 나빠졌다고 보면서도 기준금리 인하 행진을 0.5%에서 멈췄다.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내리면서 폭증한 유동성이 소비·투자 등 생산적인 곳으로 흘러가지 않고 부동산·증시와 같은 자산시장만 달구고 있기 때문이다.
16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전원일치로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동결했다고 밝혔다. 금통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위기가 본격화된 지난 3월 임시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0.5%포인트 내린 데 이어 5월 사상 최저 수준인 0.50%로 추가 인하한 바 있다.
한은은 현재 기준금리가 사실상 실효 하한 수준에 근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효 하한은 금리를 더 낮추더라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실질적 금리 하한선을 말한다. 이미 5월 금리 인하로 미국 중앙은행(0.00~0.25%)과의 기준금리 차이가 0.25~0.5%포인트 수준으로 좁혀진 상태다. 한국 기준금리가 미국 정책금리보다 낮아질 경우 해외자본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올 수 있다. 이날 이주열 한은 총재는 기준금리를 동결한 배경에 대해 “재정확장정책과 통화·금융 완화 조치들이 실물경제활동과 금융시장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는 점을 고려해 기준금리를 현 수준에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이날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도 올해 성장률이 당초 발표한 -0.2%보다 더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내놓았다. 5월 올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을 -0.2%로 예상하면서 11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률을 전망했는데 그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이 총재도 물가설명회가 열린 지난달 27일까지만 해도 “경제활동이 속속 재개되면서 당초 예상한 기본 시나리오(-0.2%)를 크게 벗어난 상황은 아니다”라고 진단했지만 3주 만에 말을 뒤집었다. 불과 3주 사이에 수출 등 각종 경제지표가 예상보다 나쁘게 나타나는 등 급박하게 상황이 변했다는 것이다. 한은에 따르면 2·4분기 수출(통관 기준) 규모는 전년 동기보다 20.3% 감소했다. 이에 따라 오는 23일 발표 예정인 2·4분기 GDP 성장률 속보치도 크게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코로나19가 이달 들어서도 진정되기는커녕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한은이 상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1.8%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날 이 총재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 향방은 결국 코로나19 전개 상황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현재 전제 아래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는 안 갈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부동산 시장에 대해서는 가계대출이 주택거래 관련 자금수요 등으로 큰 폭으로 증가했고, 수도권과 지방 모두 주택가격이 상승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부동산 시장 과열에 대해서는 기준금리 인상 등 통화정책보다 정부 정책과 수급대책 등이 우선돼야 한다고 선을 그었다. 풍부한 유동성이 자산시장으로 쏠리지 않도록 생산적인 투자처를 만드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6~7월 강력한 안정화 대책을 내놓은 만큼 주택가격 추가 상승 가능성은 상당히 제한적일 것으로 내다봤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기준금리가 거의 하한선에 왔기 때문에 여기서 더 낮춰봤자 물가를 올리거나 성장을 견인할 수 없고 오히려 자산 가격만 올리는 부작용이 생길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지원기자 jw@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