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사진=NEW 제공
‘테크노 여전사’가 엄마가 되니 좀비를 때려잡는다. 제2의 전성기, 아니 제3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다. 이정현이 영화 ‘반도’를 통해 다시 한 번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반도’는 영화 ‘부산행’ 그 후 4년, 폐허가 된 땅에 남겨진 자들이 벌이는 최후의 사투를 담았다. 15일 개봉된 ‘반도’는 첫날 무려 35만 명을 동원, 올해 최고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하며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16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현은 “코로나19 때문에 관객들이 이렇게 많이 올지 몰랐다. 기대도 안 했는데, 스코어를 듣고 놀랐고 감사드린다”며 상기된 모습이었다.
“감독님이나 배우들 모두 걱정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 시국에 개봉하는 게 괜찮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죠. 진짜 이렇게까지 많은 관객들이 오실지 몰라서 너무 걱정했는데. 영화관이 활력을 찾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영화인들 정말 힘든데, 정말 기뻐요.”
이정현은 ‘반도’에서 폐허가 된 땅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아 ‘들개’가 된 생존자 민정 역을 맡았다. 강인한 생존력과 모성애로 좀비와 631부대의 습격으로 가족을 지키고 반도에서 탈출하기 위해 정석(강동원)과 목숨을 건 사투에 나선다. 애초부터 이정현은 연상호 감독의 ‘원픽’이었다. 연 감독이 직접 연락해 시나리오를 보내며 출연 제안을 했다. 흥미로운 스토리와 완벽하게 세팅이 된 CG, 연 감독에 대한 팬심으로 이정현은 출연 제의를 승낙했다.
“일단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터 시절부터 팬이어서, 연락이 왔을 때 너무 기뻤어요. ‘정현씨, 같이 영화 해야죠’라며 시나리오를 보내주셨는데,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무엇보다 감독님께 감사했던 게 다른 배우에게 안 가고 저한테 처음 보내주신 거예요. 별다른 인연도 없는데 이렇게 민정 캐릭터를 처음부터 생각하고 연락을 주셔서 행운인 것 같아요.”
“제가 맡은 민정의 전투력이 모성애로부터 나왔다고 생각을 하니까 캐릭터가 납득이 되더라고요. 정말 내 자식의 생존이 걸려있으면 폐허가 된 대한민국에서 저 정도의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정현/ 사진=NEW 제공
데뷔 이래 처음 액션 연기에 도전했다. 탈출을 위해 모든 것을 건 강렬한 액션 연기를 위해 액션스쿨에 자진해서 나갔다. 총을 드는 자세부터 바닥을 구르고, 삼단옆차기까지 연습했다. 체력적으로 힘들었을 법도 한데 전혀 힘들지 않았단다.
“액션 영화를 찍으면 현장에서 새로운 걸 요구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몇 달 동안 액션스쿨에 나가서 만반의 준비를 했어요. 그런데 촬영 현장에 가니까 2~3초 분량의 칼 찌르는 동작 하나를 시키더라고요. 그 짧은 컷을 여러 개 찍어서 붙였는데, 동작이 되게 커 보이게 나왔어요. 불필요한 액션을 안 찍어서 사고도 한 번 안났어요. 감독님 머릿속에 콘티가 정확하게 있어서 빨리 찍었고, 촬영이 점심시간 전에 끝난 적도 있어요. 애니메이션을 하셔서 그런지 컷 계산이 되게 빠르시더라고요. 필요한 에너지만 쓰니까 전혀 피곤하지도 않았고. 좋은 현장이었어요.”
정석 역으로 출연한 강동원과의 호흡에 대해서는 “정말 잘 맞았다”고 했다. “동원 씨와 함께해서 정말 좋았어요. 성격도 너무 좋고, 액션연기도 잘하고, 상대를 편안하게 해줘서 연기 호흡이 잘 맞았어요. NG가 난 적도 없었고요. 늘 정석 캐릭터에 몰입해서 오니까, 저도 아무래도 제 캐릭터에 집중을 잘 할 수 있었어요.”
극 중 이정현의 두 딸로 등장하는 아역배우 이레와 이예원에 대해서는 “너무 대단한 아이들인 것 같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저를 보자마자 ‘엄마, 엄마’ 하고 따라다니고, 현장에서 적응력도 빨랐어요. 연기도 너무 잘해서 귀엽고 예뻤죠. 특히 이레는 촬영할 때는 작았는데, 그새 많이 컸어요. 이레랑 예원이 보니까 이런 딸을 갖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둘을 딸이라 생각하고 연기했죠. 특히 쫑파티할 때 이레랑 예원이가 제 노래인 ‘줄래’를 배워 와서 장기자랑도 했어요. 촬영장의 사랑덩어리들이었죠.”
이정현은 결혼 후 배우 활동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지난해 4월 결혼식을 올린 이정현은 연기 외에도 KBS2 예능 ‘편스토랑’에 출연하며 요리 솜씨를 뽐내기도 했다. 그는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며 결혼을 예찬했다.
“마음이 일단 너무 편해지니까, 현장에서 집중력이 좋아지더라고요. 혹시 이 영화가 잘 안되더라도 응원해주는 남편이 옆에 있고, 반려견 토리를 봐줄 사람도 있고 너무 좋더라고요.(웃음) 남편과 토리 때문에 ‘칼퇴’하기도 했어요. 세트가 대전에 있었는데, 촬영이 8시에 끝나면 보통 자고 갈 텐데, 서울에 올라가기도 했어요. 끝나자마자 딱히 할 게 없었어요. 술밖에 더 마시겠어요?(웃음)”
이정현/ 사진=NEW 제공
가녀린 체구를 지녔지만, 제 몫은 악착같이 해내면서 늘 120% 이상의 성과를 내는 배우로도 정평이 나 있는 이정현. 성공가도를 달린 듯 보이지만 25년 연기 인생이 그 어떤 배우들보다 기복이 심했단다. 배우와 가수를 오가며 전성기와 하락세를 모두 맛본 그가 내린 결론은 ‘기대를 하지 말자’ 였다. 이에 ‘반도’의 예상 관객수를 묻자 특유의 콧소리 섞인 목소리로 “기대하면 안 된다. 손익분기점만 넘었으면 좋겠다”며 손사래를 쳤다.
“20대 때 영화 ‘꽃잎’으로 톱을 찍다가 쭉 내려갔어요. 다시 가수로 정점을 찍다가 하락세를 겪고, 또 한류가 시작돼서 정점을 찍다가. 이게 계속 반복이 되니까 정신적으로 미치는 거예요. 그러다가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취미생활인 요리를 찾았어요.”
“내려놓는 법. 기대를 하지 않아야 된다는 걸 배웠어요. 지금까지도 모든 것에 기대하고 내려놓지 않고, 항상 잘하려고 하면 힘들었을 것 같아요. 항상 뜻대로 되는 일은 없으니까요. 이렇게 내려놓으면서 좋은 일 생기면 더 좋고 두 배로 기쁘거든요. 나이 들면서 이렇게 좋은 방법을 알게 된 것 같아요.”
내려놓는 법을 터득했다지만, 배우와 가수, 두 직업에 대한 열정은 숨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배우와 가수 중 한 가지를 선택한다면?’ 묻자 배우를 택했다. 과거 한 인터뷰에서 ‘할머니가 될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고 말한 이정현에게 지금도 그 생각이 유효한지 물어봤다.
“배우가 더 좋은 거 같아요. 영화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가수는 은퇴한 거 아니예요. 새 음반 계획은 없지만, 좋은 무대가 있으면 앞으로도 인사드릴게요.”
“다른 건 없어요. 나이들 때까지 계속 하고 싶어요. 관객들이 계속 찾는 배우가 되고 싶죠. 독립영화 시나리오도 계속 받고 있어요. 아직 마음에 드는 걸 못 만난 상태예요. 계속 이렇게 상업영화랑 병행하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캐릭터 좋고, 시나리오 좋고, 감독님이랑 마음이 잘 맞으면 당연히 하죠.”
/이혜리기자 hyeri@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