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해군의 항공모함이 우리 바다를 누비며 물샐틈없는 해상방어력을 보여줄 날이 그리 머지않았다. 마침내 시행에 들어간 해군의 항공모함 도입사업이 차질없이 착착 발걸음을 옮기고 있어 계획대로라면 10년 후에는 태극마크가 그려진 항공모함이 바다를 지키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17일 해군에 따르면 ‘대형수송함-II’ 도입을 위한 선행연구는 현재 계획대로 잘 수행되고 있어 오는 2030년대 초반까지는 전력화가 가능하다.
해군이 도입하기로 한 대형수송함-II는 경항공모함에 해당한다. 우리 해군의 경항공모함을 어느 조선업체가 만들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은 가운데 현대중공업과 한진중공업·대우조선해양이 수주 경쟁을 벌일 예정이다.
현재 해군은 ‘대형수송함-I’인 ‘독도함(1만4,500톤)’을 운용하고 있다. 독도함은 길이 199m·폭 31m, 최대속력 시속 42㎞, 승조원 330여명과 700여명의 상륙병력을 태울 수 있다. 또 헬기와 전차·장갑차·트럭·공기부양고속상륙정 등을 실을 수 있다. 지난 2005년 7월 독도함이 진수됐을 때 일본과 중국 등 주변국들은 “한국이 경항공모함을 운영하게 됐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하며 한국의 해군력 증강을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모습만 보면 독도함은 경항공모함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경항공모함이라고 하면 함수에 스키 점프대와 같은 갑판이 있어야 하고 수직이착륙 전투기가 탑재돼야 한다. 독도함은 이런 모습이 아니어서 경항공모함이라고는 볼 수 없다. 해군 역시 “독도함은 경항공모함이 아니라 다목적 대형수송함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해군이 운용하게 될 대형수송함-II는 독도함보다 한층 업그레이드된 함정으로 수직이착륙이 가능한 전투기가 탑재된다. 대형수송함-II에 실리는 전투기는 미국의 5세대 스텔스 전투기인 ‘F-35B’가 유력하다.
대형수송함-II의 이름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대형수송함은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섬의 이름을 붙이는 점을 감안하면 기존의 독도·마라도에 이어 백령도·연평도 등과 같은 섬 이름이 붙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방부 관계자는 “대형수송함-II는 해군의 첫 항공모함인 만큼 의미가 있으니 국민 여론과 각계의 의견을 감안해 이름을 붙일 것”이라며 “필요하면 국민공모 등의 이벤트도 진행할 수 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는 수십년 전부터 항공모함 도입의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뭔가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다. 1990년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러시아로부터 항공모함을 도입했다가 전력화에 실패한 적이 있다. ‘항공모함 보유국 시도’라는 해프닝으로 끝난 어처구니없는 사건이었다.
독도함.
러시아의 항공모함이 한국에 들어온 사연은 이렇다. 러시아는 1991년 구소련이 해체되자 경제사정이 매우 안 좋아졌다. 이에 당시 러시아는 육해공군의 무기들을 해외에 팔았고 여기에는 항공모함도 포함돼 있었다. 이때 러시아는 노보로시스크호와 민스크호라는 2척의 항공모함을 매각하기로 했다. 당시 두 항공모함의 함령을 보면 노보로시스크호는 11년, 민스크호는 15년이었다. 항공모함의 평균 함령이 30년인 점을 감안하면 충분히 사들일 만한 함정이었다. 러시아의 항공모함을 사들이기 위해 세계 각국의 방위산업체 등 33곳이 매수 경쟁을 벌였고 이때 한국도 참가했다. 그런데 한국은 정부가 아닌 ‘영유통’이라는 민간무역회사가 항공모함 매수를 시도했다.
1994년 이 항공모함들은 영유통이 사들이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영유통은 총 71억원(민스크호 37억원, 노보로시스크호 34억원)이라는 싼값에 항공모함 두 척을 들여왔다. 그런데 러시아는 이 항공모함들을 그대로 팔지 않고 레이더와 방공정보시스템·미사일발사대 등 주요 장비는 모두 해체하고 한국에 보냈다. 1995년 포항 앞바다로 온 이 항공모함은 바다에 떠 있는 고철 덩어리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항공모함이 전혀 쓸모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때 국내의 여러 조선사가 두 척의 항공모함을 직접 들여다보면서 구조를 파악했고 이는 함정건조기술을 한 단계 높이게 된 계기가 됐다. 군 관계자는 “당시 러시아의 항공모함을 분석하면서 얻은 기술로 지금의 독도함 등 대형함정을 만들 수 있었다”면서 “그냥 고철 덩어리로만 여겨졌던 러시아 항공모함이 우리의 함정건조능력을 업그레이드시킨 셈”이라고 전했다. 이후 영유통은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경영이 어려워졌고 다음 해 두 항공모함을 중국에 팔았다. 1990년대 항공모함을 전력화하지 못한 아쉬움은 있지만 함정건조기술은 얻었으니 나름의 성과는 있었던 것이다.
이런 곡절을 겪었던 우리 해군이 숙원이었던 항공모함을 마침내 갖게 됐다. 현재 항공모함 보유국은 미국·중국·일본·호주·이탈리아·러시아·영국·프랑스·브라질·인도·태국·스페인 등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항공모함 보유국 반열에 올라설 예정이고 이는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우선 항공모함은 강한 군사력의 상징이라는 의미가 있다. 급변하는 안보환경과 자국 우선주의가 강해지는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 역시 강력한 힘이 요구된다. 특히 영토의 삼면이 바다인 우리나라는 해양 의존도가 높아 ‘해양강국, 대양해군’을 비전으로 하는 만큼 바다를 통해 국력을 키우는 게 중요하다.
항공모함 운용은 주변국 간 해양분쟁을 적극적으로 억제·방위하고 해양주권 의지를 보여주는 의미도 있다. 우리나라 주변 가운데 북한을 제외하고 일본·러시아·중국은 모두 항공모함을 보유하고 있다. 우리 해역은 중국 등 주변국들로부터 도발상황이 자주 발생하는 실정에서 항공모함을 통해 해양주권 수호 의지를 강력하게 전달하는 효과가 있다.
항공모함은 해상은 물론 지상과 공중 등 모든 영역에서 작전이 가능한 움직이는 다목적 군사기지이다. 상륙군과 장비·물자를 수송하고 해상기동부대를 지휘통제하며 원거리 항공전력을 갖게 하는 게 항공모함이다.
군사적 위협뿐 아니라 비군사적 위협으로부터도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 가운데 하나가 항공모함이다. 해난사고 발생 시 다수의 헬기와 보트를 현장에 투입할 수 있고 항공모함 자체에 의료시설을 갖추고 있으니 든든한 바다 지킴이 역할도 톡톡히 한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이후 한국군 주도의 연합작전 수행을 위한 핵심 중 하나가 항공모함이다. 이런 점에서 항공모함의 운용은 곧 자주국방 능력을 높여준다는 의미도 있다.
일부에서는 우리가 항공모함을 도입함으로써 주변국의 군비경쟁을 가속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하면 작전영역이 넓지 않기 때문에 항공모함은 필요하지 않다는 ‘항모무용론’도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보면 중국과 러시아·일본 등 주변국은 이미 해양력 강화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우리의 군사력이 세계 10위권 이내인 점을 감안하면 항공모함의 도입은 늦은 감이 있다.
박창권 한국국방연구원 국방전문연구위원은 “경항공모함급의 대형수송함은 해군의 입체적 작전 능력을 높여주고 다양한 안보위협으로부터 우리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라며 “항공모함 운용은 자주적인 전력을 확보해 북한을 비롯한 주변국의 위협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욱기자 myk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