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17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여성폭력방지위원회 긴급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연합뉴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에 미온적으로 대응해 비판을 받고 있는 여성가족부가 17일 여성폭력방지위원회 긴급회의를 열었다. 여성 인권 주무부처지만 박 전 시장 사건 국면에서 성추행 피해자를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뒤늦게 여론 수습에 나선 것이다. 이정옥 여가부 장관은 이날 회의에서 “마음이 무겁고 깊은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면서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 장관의 입장 발표와 별개로 여가부 내에서는 고위공직자 성폭력 재발을 막기 위해 법·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고위공직자 성폭력 사건이 발생해도 법적 수사권이 없는 여가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국회 입법을 통해 여가부에 형사고발권 등이 부여돼 적극적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이 같은 목소리에 대해 여성 인권 주무부처로서 내부역량·의지부족을 입법부에 전가하는 책임회피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행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르면 국가기관에서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 여가부 장관이 취할 수 있는 권한은 관련 기관장에게 가해자의 징계를 요청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성추행 혐의자를 수사하는 권한이 없을 뿐만 아니라 박 전 시장이나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오거돈 전 부산시장과 같이 기관장 본인이 성추행을 저지를 경우에는 사실상 여가부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날 여성폭력방지위원회에 참가한 민간위원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도 “입법이 가능하다면 여가부의 기능을 넓힐 수 있는 게 좋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가부 권한의 법적 한계는 국회에서 논의돼왔지만 법 통과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20대 국회에서는 여권을 중심으로 성희롱·성차별 피해를 직접 조사하고 형사 고발하는 권한을 여가부에 주는 법안이 의원 발의 형태로 추진됐지만 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해당 법안이 남녀갈등 문제로 비화하면서 여론 형성이 쉽지 않았던 점도 걸림돌로 작용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수사권과 같이 실질적인 권한은 없는 데 비해 책임이 너무 큰 부분이 있다”며 “21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이 발의돼 통과될지 장담할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지난해 기준 처음으로 부처 예산이 1조원을 넘긴 ‘미니 부처’로서 만성적인 인력·재정 부족도 여가부가 호소하는 어려움 중 하나다.
다만 여가부가 국회의 입법 지원을 무한정 기다려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안 전 지사와 오 전 시장 사건 등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고위공직자의 성추문이 반복되고 있는데 사건이 터질 때만 관련 기관에 대한 점검을 실시할 뿐 뚜렷한 재발방지 대책을 내놓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장관은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을 위한 각종 법·제도를 보완해왔고 예방교육과 인식개선을 위한 노력도 해왔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면서 “제도적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고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해나가기 위해 한층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이경운기자 clou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