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핑크 제니가 '픽'한 옷도 "대량생산 안한다"…그남자의 자신감

'아기 유니콘' 이스트엔드 김동진 대표
'레어템' 좋아하는 1020 겨냥
트렌드 따르며 소량 제작 고집
K패션도 K팝처럼 도약하려면
대량생산보다 디자인 집중해야

김동진 이스트엔드 대표가 성수동에 위치한 이스트엔드 본사에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 패션 산업이 존폐 위기에 내몰린 상황에서도 K팝에 이어 K패션도 한국을 대표하는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히는 이가 있다. 바로 최근 중소벤처기업부가 선정한 ‘아기 유니콘’에 이름을 올린 김동진(사진) 이스트엔드 대표다. 이 회사는 로즐리를 비롯해 시티브리즈 등 여성복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으며 모든 의류를 자제 디자인 생산한다. 또 타사의 의류 제조·생산·브랜딩·풀필먼트까지 의류 관련 모든 사업을 하고 있다.

20일 성수동에 위치한 이스트엔드 본사에서 만난 김 대표는 글로벌 걸그룹 ‘소녀시대’ 태연과 ‘블랙핑크’의 멤버들이 시티브리즈 옷을 너무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한껏 들떠 있었다. 그는 “지수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원피스는 바로 ‘완판’이 됐다”며 “제니 역시 ‘옷이 너무 좋다’고 극찬을 했다”고 말했다. 이렇게 글로벌 스타가 ‘픽’하면 바로 ‘완판’이 되지만 김 대표는 “같은 옷을 만들 계획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대량 생산으로 가는 순간 옷은 트렌드를 벗어나고 가치가 떨어진다는 그의 고집스러운 철학때문이다. 잘 팔리는 디자인이 생기면 바로 대량 생산해 돈을 벌려던 기존 국내 관행과는 사뭇 다른 파격이다. 이중섭의 황소 그림이 잘 팔린다고 수백개를 그려 팔면 작품으로서 가치가 떨어지는 것처럼 세상에 단 하나 뿐인 ‘한정판’ 옷을 고수하는 것이다.

그는 이런 관행을 바꾸면 “한국의 패션브랜드 중에도 루이비통이나 디올 등처럼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다양한 디자인의 옷을 소량만 제작한다는 김 대표의 전략은 ‘한정판’ 등 ‘레어템’을 좋아하는 1020세대를 겨냥한 것이다. 젊은 소비자들의 행동 조사 분석한 결과 이들은 자신만의 취향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또 1020 사이에서 활발한 중고 거래 역시 ‘한정 수량’만을 제작하는 이스트엔드가 추구하는 비즈니스 모델과 딱 맞아떨어진다는 점도 고무적으로 보고 있었다.

그는 “보세 옷을 어떻게 중고 시장에 내놓겠냐”며 “몇 천원 주고 산 옷은 대체 얼마에 내놓을 것이냐, 결국 질이 좋고 흔하지 않은 디자인의 옷만이 거래 대상이 된다”고 설명했다. 명품가방 처럼 명품 옷도 앞으로는 시간이 지나면 가격이 비싸지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게 김 대표의 전망이다.

그는 “이제 한 번 입고 버릴 옷과 10번 이상 입을 옷 중 어느 것을 선택해야 할 시점”이며 패션의 트렌드가 변하고 있다고도 했다. “스파 브랜드, 의류 플랫폼 등으로 인해 20~30년 전보다 의류의 질은 떨어졌다”며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면서 디자인과 색의 다양성을 잃었고 소비자들도 이제 지쳤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앞으로 ‘한정판’ 등 유니크한 제품을 추구하는 방향이 패션 트렌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진 이스트엔드 대표가 성수동에 위치한 이스트엔드 본사에서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이스트엔드는 올해 2·4분기에 이미 창사 이래 최대 매출을 찍었다. 이렇게 잘 나가는 김 대표지만 벤처캐피털(VC) 투자가 의류제조 보다는 의류판매 플랫폼으로 집중되는 점에 대해서는 안타까움도 드러냈다. 시가총액 기준으로 세계 의류 회사 톱 20위 중 플랫폼 회사는 미국의 스티치픽스(13위)가 유일한데도 국내에서는 여전히 플랫폼 위주의 투자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그는 “1위는 루이비통 등을 보유한 LVMH, 2위는 에르메스 등이고 한국의 기업은 휠라코리아와 F&F가 각각 16위와 18위”라며 “모든 산업의 뿌리가 제조업이듯 의류 산업의 뿌리이자 핵심 역시 옷을 만들고 브랜딩하는 회사지 플랫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앞으로 이스트엔드의 모든 상품을 영상으로 소개하는 한편 모든 크리에이터, 인플루언서들의 굿즈를 제작하는 플랫폼으로 키운다는 목표도 설정했다. 이를 위해 최근에는 MCN회사로부터 인재들을 영입했다. 그는 “우리는 동대문 옷을 떼다 파는 회사가 아닌 디자이너들이 디자인한 ‘고퀄(고퀄리티)’의 옷을 파는 회사”라며 “이제 상품 소개 등을 이미지와 텍스트가 아니라 비디오로 모두 교체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사진=이호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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