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박원순 시장이 고소인에게 보낸 것이라며 비밀대화방 초대문자를 공개하고 있다./연합뉴스
여권에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전직 비서 A씨를 ‘피해자’가 아닌 ‘피해 호소인’으로 지칭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피해자를 피해자로 부르지도 않는 상황은 전례를 본 적이 없다”며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이 교수는 22일 오전 전파를 탄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경찰에 신고를 하는 즉시 법적으로는 ‘피해자’가 된다”며 “그런 부분에 대해서조차 인정을 안 해 주면서 피해 사실을 원천적으로 일종의 음모처럼 이렇게 몰고 가는 그런 태도는 매우 잘못 됐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흔히 권력이 가는 데는 위계나 위력에 의한 성희롱 사건이 계속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특이성들이 있다 보니 굉장히 많은 (비슷한) 사건을 봤지만, 이렇게 ‘피해자’라는 명칭조차 사용하면 안 되는 듯한 사회 분위기는 생전 처음 봤다”며 “경찰에 절도를 당했다고 신고를 하면 그때부터 절도 피해자가 되는 거고, 사기를 당했다고 신고하면 사기 피해자가 되는데 왜 성희롱, 성추행으로 신고를 하면 피해자가 안 되고 피해 호소인이 돼야 하느냐”고 물었다.
이어 “심지어 성범죄의 피해자가 되기 위해서는 특별히 자격요건이 필요한 것인지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참 괴이한 현상들이다(라고 느꼈다)”라며 “저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라 다수의 여성들, 특히 조직에서 근무하는 여성 근로자들은 다 비슷한 느낌을 아마 받았을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이 교수는 “우리가 이렇게까지 신고하는 게 어려우면 그럼 만약에 내가 그런 피해 상황이, 경험을 대면하게 되면 신고를 해야 하는 일인지,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인지 사실 굉장히 고민까지 하게 되는 그런 이상한 상황이 이제 전개됐다”며 “그분을 추모하는 것과는 별개로 피해를 당한 이 고소인의 피해도 부인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그는 “피해자가 피해자로 불린다고 해서 가해자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쏘아붙였다. 이어 “우리나라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서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입증의 과정을 거쳐야만 유무죄가 가려지는 좋은 사법절차를 갖고 있기 때문에 피해자를 피해자라고 부르는 것으로 무엇이 이루어지는 게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민감하게 2차 가해행위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냐”며 “이게 어떻게 보면 누적된 우리나라의 성범죄를 바라보는 왜곡된 시각들의 정말 단적인 사례가 아닌가. 이런 생각까지 든다”고 한탄했다.
김재련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변호사가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 교육관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피해자가 4년 동안 박 전 시장을 고소하지 않고 참아 왔다거나, ‘피해자다움’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는 이유로 일부 지지자들의 비난을 받는 것에 대해서는 “위계에 의해서 심리적으로 위축된 걸 경험해 본 적 없는 분들은 대체 왜 신고 안 하냐 이렇게 비난을 하시는데 이것은 피해자에게 또 다른 아픔이 될 수 있다”며 “신고를 하고 싶었으나 신고를 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장기간 동안 근무를 함께해야 되는 이런 조직에서는 상사가 일단은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기 때문에 피해자가 쉽게 발고하기가 어렵다”며 “더군다나 지금 혐의가 있으신 분들은 주변에 굉장히 많은 일종의 방패 비슷한 많은 동료들이 있다. 그러다 보니 피해자들은 그분들과 모두 싸워야 되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고, 그런 와중에 시간이 가게 된다”고 했다.
이어 “(고소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고) 나와도 정말 그 길로 경찰에 가는 것은 너무나 먼 길이고, 그다음 날 출근을 할 수가 없으니까. 본인의 생업을 쉽게 포기할 수 있느냐. 이것도 누구도 쉽게 포기할 수 없다”며 “결국에는 나중에 피해자들도 빨리 신고를 할 걸 그랬다라는 자책을 하게 된다. 지금 이번 피해자도 내가 그때 좀 더 분명하게 신고를 할 것을 그랬노라고...(자책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피해자가 확실한 증거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일부 지적에 대해서도 “경찰이 사건화를 할 때는 증거가 전혀 없는데 사건화를 하지는 않는다”며 “피해자가 오늘 2차 조사를 받았다고 하는데, 아마도 그 안에 있는 사진이나 문자 기록 같은 것도 있었을 것이다. 고소라는 건 고소가 될 만한 충분한 어떤 근거가 있어야지 고소인으로 취급을 받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그 대목까지는 충분히 무엇인가 해당사항이 있다, 이렇게 볼 수가 있다”고 일축했다.
한편 피해자 A씨를 돕고 있는 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의전화는 이날 오전 11시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폭력 사건 2차 기자회견’을 연다. A씨의 법률대리를 맡은 김 변호사는 “불필요하게 나오는 오해도 있는 것 같다. 기자회견에서 궁금해하는 내용을 대부분 말씀드리려 한다”며 “2차 피해나 성추행 방조, 공무상 기밀누설 등은 행위자가 사망한 것은 아니니 수사기관에서 적극 수사해 필요하다면 처벌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예리기자 sharp@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