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칼럼] 눈앞에 닥친 또 다른 재난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실업수당 혜택 늘린 美경기부양법
실직한 수백만명 경제 생명줄인데
트럼프와 공화당 '연장 동의' 안해
이달 종료...경제 대재앙 시작될것

폴 크루그먼

우리 중 일부는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감이 아니며 돌발적 위기상황에 대처할 능력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드러난 트럼프의 무능은 그에게 냉소를 퍼붓던 사람들마저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현재 플로리다의 하루 평균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20배나 많은 인구를 거느린 유럽연합(EU) 전체 사망자 수와 맞먹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치명적 대참사를 초래한 핵심 요인은 트럼프 행정부와 공화당의 지독히 근시안적인 사고다. 위기의 단계마다 그들은 약간의 주의를 기울이기만 하면 누구나 분명히 볼 수 있었던 임박한 재난을 아예 인정하지 않았고 곧이어 닥친 급박한 위기상황에 늑장대응으로 일관했다.

불과 며칠 후면 또 다른 재앙이 우리에게 닥칠 것이다. 이번엔 돌림병이 아니라 경제 재난이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한 가지 사실을 알아야 한다. 미국의 코로나19 대처는 전체적으로 참담한 실패였지만 경제적 대응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양호했다. 민주당의 입안 이후 양당 합의로 지난 3월 말 의회를 통과한 경기부양법(CARES Act)은 법안 작성과 시행 과정에 약간의 하자가 있었지만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초래한 고통과 후폭풍을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했다.

특히 경기부양법은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봉쇄조치로서 일자리를 잃거나 근무시간 단축으로 임금이 삭감된 노동자들에 대한 지원을 대폭 확대했다. 일반적으로 미국의 실업수당은 어려움에 처한 노동자들을 보호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많은 근로자가 실업수당 적용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실직자들이 손에 쥐는 실수령액도 이전 임금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그러나 경기부양법에 따라 프리랜서 등 이른바 ‘긱 워커(gig worker)’까지 실업수당 적용 대상에 편입됐고 수령자 전원에게 매주 600달러의 긴급 수당이 추가로 지급됐다. 대폭 확대된 혜택은 두 가지 성과를 냈다. 첫째, 팬데믹으로 미국 전역에서 총 2,200만개의 일자리가 일시적으로 사라졌음에도 실직자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예상처럼 심하지 않았다. 또 대폭 인상된 실업수당은 봉쇄 대상에서 제외된 경제의 각 부분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줬다. 추가 지원이 없었다면 실직 노동자들은 씀씀이를 대폭 줄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이 경우 전방위적인 2차 실직 사태와 경기 위축이 발생하면서 집세 체납과 강제퇴거 조치가 뒤따랐을 것이다.


지원이 늘어난 긴급 실업수당은 수천만명의 미국인들을 경제적 고통에서 건져낸 생명줄이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불과 며칠 후면 긴급 실업수당이 종료된다. 주당 600달러의 추가 실직수당이 적용되는 마지막 주말은 7월31일 혹은 그 직전 주의 주말까지다. 7월31일은 금요일이고 각 주 정부의 실직수당 지원은 보통 토요일이나 일요일에 끝난다. 불과 며칠 뒤에는 수백만명의 실직 근로자들이 수입의 60% 이상을 잃게 된다는 의미다.

연방하원은 이미 두 달 전 긴급 실업수당 지급기한을 올해 연말까지 연장하자는 내용을 포함한 구제안을 승인했다. 그러나 상원을 장악한 공화당과 백악관은 눈앞에 닥친 긴박한 위기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왜 그럴까.

트럼프와 그의 관리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의 영향이 크지 않다고 답한다. 그들은 지금도 미국 경제가 급속한 V형 회복세를 보일 것이고 이에 따라 조만간 완전고용이 이뤄질 것이기 때문에 실직자들에 대한 특별 지원은 필요하지 않다고 믿는다. 경제회복에 관한 망상은 보수주의자들로 하여금 위축된 경제상황에서 실업자들을 돕는 것이 그들의 근로의욕을 저하해 일자리 창출을 해친다는 해묵은 ‘좀비’ 아이디어에 빠져들게 했다.

팬데믹의 한복판에서 고용 지원에 대한 걱정을 앞세우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지만 바로 그것이 현 경제정책에 대해 백악관이 가진 사고의 핵심이다.

마지막으로, 공화당은 그들이 처한 형편에 망상적인 견해를 갖고 있다. 긴급구제 지연으로 수백만명이 궁핍한 지경에 이르면 민주당이 아니라 그들이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듯 보인다. 지금 공화당은 행동에 나설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대재앙 전망이 공화당이 올바른 판단을 내리도록 도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백만명의 미국인들은 수 주 혹은 수개월간 참담한 경제적 고통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이 같은 재앙은 일어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숱한 잘못된 일들 역시 일어날 필요가 없었던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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