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정권에 자진투항…유신 때와 뭐가 다르냐" 文대통령에 물은 안철수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2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연합뉴스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을 받고 있는 이동재 전 채널A 기자와 한동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의 전체 대화 녹음 파일이 22일 이 전 기자의 변호인을 통해 공개된 가운데,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이번 날조 공작 사건이 유신시절 죄 없는 대학생을 간첩으로 몰던 때보다 뭐가 나은 건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느냐”며 날 선 질문을 쏟아냈다.

녹취록과 관련한 KBS의 오보에 대해서는 “방송사가 아예 문을 닫아야 할 엄청난 일”이라고 맹폭했다. KBS는 지난 18일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이 지난 4월 총선을 앞두고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신라젠 주가 조작을 연루시키려 공모한 정황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가, 바로 다음날 오보를 인정했다.

안 대표는 23일 국민의원 최고위원회에서 이 전 기자와 한 검사장의 녹취록 전문을 언급하며 “녹취록 전문이 공개되자 법무부 장관이 직접 총대를 메며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소위 ‘검언유착’의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며 “녹취록을 인공지능 분석기에 넣어서 돌려보면 공모라고 나올지, 모함이라고 나올지 AI에게 물어볼 것도 없이 글만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답은 정해져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그런데도 공모라고 우기는 것은 집단 난독증에 걸린 사람들뿐이다. 바로 법무부 장관을 비롯해 정권의 충견을 자처하는 사람들”이라며 “최근의 KBS 오보 사건의 본질은 한마디로 ‘정치공작’”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KBS 오보 사건은) 권력에 줄 선 언론사 데스크가 윗선의 사주를 받아, 지시를 거부하기 어려운 신입사원을 시켜 정권의 눈엣가시를 찍어내려한 비열한 정치공작”이라며 “정권의 선전 스피커로 전락한 공영방송이 가짜뉴스 공장이 되고, 방송사 데스크까지 공작정치에 동원된 역대급 스캔들”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다른 때 같았으면 방송사가 아예 문을 닫아야할 엄청난 일인데도 여당은 그런 방송사에 시청률을 올리자고 한다”며 “언론이 정권에 자진투항하고 어용 시민단체가 권력의 밥상에 숟가락을 놓느라 여념이 없는 사이에 유신과 5공 때나 있던 공작정치가 판치는 현실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안 대표는 꼭 총과 칼을 들어야만 권위주의 정권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언론이 정권의 나팔수와 홍위병이 되면 그것이 바로 독재정권이고 권위주의 정권이 되는 것”이라며 “날조와 공작, 선동과 갈라치기로 유지되는 정권, 그것이 바로 독재 정권”이라고 쏘아붙였다.

한동훈 검사장.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른바 ‘검언유착’ 사건 관련 특검과 국정조사도 요구했다. 그는 문 대통령에게 “지금의 권력 지형과 언론 환경이 유신이나 5공 때와 무엇이 다르냐”며 “누군가를 역모로 몰기 위해 본적도 없는 사돈의 팔촌까지 갖다 붙이던 왕조시대와 무엇이 다르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단순한 국정농단 사건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국가 자체를 농단하는 ‘국가농단’ 사건”이라며 “청와대만 쳐다보는 어용검찰의 수사가 아니라 특검과 국정조사로 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이것이 단지 한 사기꾼이 주도해서 시작한 일이겠느냐 배후를 철저하게 밝혀내야 한다”며 “사법부에 요청한다. 이 사건은 ‘검언유착’ 사건도, 단순한 오보 사건도 아니다. 언론을 타락시키고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공직자에게 모함의 굴레를 씌운 공작 정치의 끝판왕이다. 의도를 가지고 그림을 그리고 지시를 내린 몸통을 찾아내 철저하게 단죄해 주시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날 안 대표의 발언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직후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도 “안철수 대표 말대로 특검으로 가야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진 전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안 대표 관련 기사를 링크한 뒤 “채널 A와 한동훈 기자 건만이 아니라, 지현진-최강욱-황의석의 ‘작전’, 그리고 서울중앙지검에서 흘러나온 녹취록이 ‘제3의 인물’을 통해 KBS의 오보로 연결되는 조직적 여론조작의 과정까지 모두 다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글에서도 “서울중앙지검에서 녹취록을 흘린 것, 누군가 그 녹취록 왜곡해 공영방송 통해 여론조작한 것. 두 가지가 문제가 된다”며 “민주주의 사회에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 이거, 중대한 사태”라고 했다.

한편 이 전 기자 변호인 측이 공개한 녹취록 전문에는 이 전 기자가 신라젠 의혹과 유시민 등 여권의 유력 인사의 연루설 등을 한 검사장에게 설명하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해당 녹취록이 ‘검언유착의 정황 증거’라는 KBS와 MBC의 보도와는 달리 전체 맥락상 이 전 기자의 설명을 들은 한 검사장의 발언은 원론적 취지의 답변으로 해석돼 녹취록 왜곡 논란이 일었다. KBS는 이에 지난 19일 오보를 인정하고 사과했다. /조예리기자 shar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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