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인텔제국'.. 한숨짓는 '삼성전자' [양철민의 인더스트리]

인텔, 7나노 공정 칩 출시 일정 늦춰
초미세공정 경쟁에서 뒤쳐진 결과
신규 CPU 출시하면 D램 판매 확대
인텔만 바라보는 메모리 업체에 악재


반도체 업계 ‘전통의 강자’ 인텔이 7나노(10억분의 1m) 공정 기반 반도체 출시 시기를 6개월 가량 늦춘다. 업계에서는 인텔이 최근 그래픽처리장치(GPU) 1위 업체인 엔비디아에 시총을 추월당하는 등 입지가 예전만 못하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특히 반도체 생산이 극자외선(EUV) 노광장비 활용이 필수인 5나노 이하로까지 초미세화 되면서 관련 부문에 대한 투자를 게을리한 인텔의 시대가 저물고 있다는 분석까지 제기된다.

문제는 이 같은 인텔의 몰락이 삼성전자(005930) 반도체 사업에 악재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인텔은 글로벌 서버·PC용 중앙처리장치(CPU) 시장에서 압도적 점유율을 자랑한다. 서버용 CPU 점유율은 95%, PC용 CPU 점유율은 83% 이상이다. 서버와 PC 업체들은 인텔의 신형 CPU가 나오면 이에 맞춰 서버나 PC를 업그레이드해 내놓는다. 당연히 D램이나 낸드플래시도 추가 구매해 탑재한다. D램·낸드플래시 업계 1위인 삼성전자로서는 인텔의 제품 반도체 출시 시기 지연이 매출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인 셈이다.


인텔은 23일(현지시간) 올 2·4분기 실적 발표 콘퍼런스콜에서 7나노 기반의 반도체 (미티어 레이크) 출시 시기를 기존 대비 6개월 가량 늦춘 2022년 말이나 2023년 초에 내놓겠다고 밝혔다. 인텔은 같은 라인업의 제품이라도 일반적으로 PC용 칩을 먼저 내놓고 1년 정도 뒤에 서버용 칩을 내놓는다. 안정성이 중요한 서버용 칩 특성상 제작 난도가 높고 주요 클라우드 업체와 안정화 테스트 등을 오랜기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7나노 기반의 인텔 서버용 CPU는 일러도 2023년 말에나 만날 수 있을 전망이다.


인텔은 10나노 기반의 PC용 CPU인 ‘타이거레이크’를 올 3·4분기에, 10나노 기반의 서버용 ‘아이스레이크’는 연내 출시한다고 밝히며 시장의 우려를 불식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시간외거래에서 주가가 10%이상 폭락하는 등 시장 우려가 상당하다.

업계에서는 인텔의 이 같은 늦은 기술고도화가 경쟁사인 AMD에게 기회가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는다. AMD는 7나노 급 CPU 설계 기술을 갖추고 있으며 TSMC에 반도체 생산을 위탁하고 있다. TSMC와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는 현재 EUV 노광기를 바탕으로 5나노 기반 반도체 양산이 가능하다.


반면 인텔은 외부 파운드리에 맡기지 않고 CPU를 전량 자체 생산한다. 인텔이 반도체 설계와 생산을 동시에 하는 구조인데다 삼성전자나 TSMC 대비 파운드리 첨단 공정에 대한 투자 여력이 많지 않아 AMD와의 점유율 격차가 갈수록 좁혀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시장조사업체 머큐리리서치에 따르면 AMD의 PC용 CPU 점유율은 올 1·4분기 기준 17%를 웃돌며 5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인텔의 부진은 삼성전자와 같은 메모리 반도체 사업자에게는 악재다. 마이크로소프트나 아마존 등 클라우드 사업자들은 서버용 신형 CPU가 나올 때 마다 이를 함께 구동할 D램과 낸드플래시 구매를 늘린다. 최근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언택트 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인텔의 신형 CPU가 출시될 경우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로서는 수년전의 ‘슈퍼 사이클’을 노릴 수도 있는 셈이다. SK하이닉스(000660)만 하더라도 올 2·4분기 D램 매출에서 서버용 D램 비중이 50%에 육박하며 언택트 수요 확대 덕을 톡톡히 봤다. 반면 인텔의 최첨단 CPU 출시 지연으로 삼성전자 등은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모바일향 D램 의존도를 늘리며 수익을 보전해야 하는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AMD가 인텔의 자리를 대신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지만 대부분 업체는 여전히 전통의 강자 인텔 제품을 선호한다”며 “서버용 반도체 시장은 인텔이 이끌고 메모리 반도체 업체들이 뒷받쳐주는 형태라는 점에서 인텔의 신제품 출시 지연은 AMD를 제외한 나머지 반도체 업체에 좋지 않은 소식”이라고 밝혔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