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지난 23일 서울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 국무위원 식당에서 20∼30대 여성들과 가진 ‘성 평등 조직문화 논의 간담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성가족부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 사건 국면에서 역할 강화를 꾀하고 있지만 현실은 정반대로 흐르고 있다. 법 개정을 통해 부처 권한을 강화하겠다는 방안은 야당 협력을 기대하기 힘들고 국가인권위원회와 역할까지 겹쳐 부처 간 갈등 우려가 제기되는 가운데 폐지 청원에 10만명이 넘는 국민이 동의할 정도로 여가부의 역할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많기 때문이다.
26일 정부 부처 등에 따르면 여가부 내에서는 박 전 시장 사건을 계기로 성추행 공직자 조사권을 비롯 부처 권한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르면 국가기관에서 성추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 여가부 권한은 해당 기관장에게 가해자 징계를 요청하는 수준에 불과한데 이를 직접 조사하는 권한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최성지 여가부 대변인은 지난 23일 정례 브리핑에서 “타 기관과 협업체계가 강화되도록 법 계정 검토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여가부의 바람과 달리 역할 강화의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이다. 먼저 양성평등기본법 개정 등 법적 절차가 필수인데 국회에서 야당의 협력을 기대하기가 힘들다. 최근 김현아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이 “위계에 의한 성폭력이 끊이지 않는데 제 역할을 못하는 여가부는 해체하는 게 답”이라고 밝히는 등 야당과 여가부의 관계가 박 전 시장 사건을 계기로 급격히 나빠졌다. 여기에 더해 더불어민주당이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폐지를 추진하는 등 여당과도 관계가 원활하지 못한 상황이다.
국회 국민청원 사이트에 게시된 ‘여성가족부 폐지에 관한 청원’./국회 국민청원 사이트 캡쳐
국회 협력이 보장되더라도 성추행 조사권을 두고 인권위와 마찰을 빗을 수 있다는 점도 우려로 제기된다. 현재 박 전 시장 경우와 같이 성추행 사건의 조사권한은 국가기관 중 인권위가 담당하고 있다. 지난 2005년 노무현 정권 당시 여성부가 여성가족부로 확대 개편되면서 보건복지부의 가족정책 업무를 넘겨받고 성차별 사건 조사·처리 기능을 인권위에 이전했기 때문이다. 여가부 관계자도 “법 개정 절차가 진행된다면 가장 먼저 인권위와 권한을 놓고 논의를 해봐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시장 사건을 계기로 여가부에 대해 국민 여론이 악화된 것도 부처 역할 확대를 막는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국회에 따르면 지난 17일 국회 국민청원 사이트에 올라온 여가부 폐지 요구 국민청원이 동의자 10만명을 넘어 곧 행정안전위원회 등 관련 위원회의 심사가 예정돼 있다. 국회 국민청원은 청와대와 달리 30일 이내 동의자 10만명이 넘으면 국회가 의무적으로 심사를 해야 한다. 여가부 입장에서는 권한 확대를 위해 협력이 필수인 국회를 상대로 존재 필요성부터 설명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경운기자 clou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