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항공(020560) 인수를 진행하고 있는 HDC현대산업개발(294870)이 오는 8월 중 아시아나에 대한 재실사를 하자며 3개월의 추가 기간을 요구했다. HDC(012630)현산은 금호산업(002990)이 일방적으로 인수 해지를 언급한 것에 불쾌감을 드러내며 인수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HDC현산의 이 같은 입장발표에도 시장에서는 이스타항공에 이은 ‘노딜’ 선언의 명분 쌓기가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HDC현산은 지난 24일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공문을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에 통보했다고 26일 밝혔다. 이번 공문은 금호산업이 14일 인수 거래를 마무리하자고 내용증명을 보낸 데 대한 답신 격이다. 금호산업은 한 달 안에 인수를 종결하지 않을 경우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내부 입장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HDC현산 측이 재실사를 요구한 것은 겉으로는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에 대해 신뢰가 무너졌다고 주장하지만 속내는 ‘노딜’ 선언을 위한 명분 쌓기라는 해석이 나온다. 당초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의 인수를 상반기 중 마무리하겠다며 신속하게 작업을 진행했다. 하지만 4월 HDC현산은 돌연 아시아나항공의 실사 작업을 중단하며 인수와 관련해 이렇다 할 답변을 내지 않았다. 사실상 인수 작업을 전면 중단한 셈이다. 이에 대해 HDC현산은 “4월 초 최초로 재실사를 제안한 후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이 100여일 동안 응하지 않고 있어 엄정하게 촉구했다”고 밝혔다.
HDC현산이 문제삼는 부분은 계약 전후로 달라진 아시아나항공의 ‘변화’였다. 아시아나항공이 지난해 반기 재무제표 대비 부채와 차입금·당기순손실이 증가해 재무가 악화된 점, 추가자금 차입과 영구전환사채 신규발행이 동의 없이 진행된 점, 부실 계열회사에 대한 자금지원, 금호티앤아이의 전환사채 상환으로 계열사에 부담이 전가된 점, 외부감사인의 부정적인 감사의견, 계열사 부당지원 문제 등을 이유로 들었다. 결국 HDC현산은 아시아나항공의 인수를 위해서는 이 부분에 대해 따져봐야 한다는 의견을 수차례 피력했다. HDC현산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더라도 경영 정상화에 인수자금보다 더 많은 자금이 필요하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도 분석된다. 여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HDC현산의 마음을 돌리기에 충분한 변수였다. 산은과 협상을 거쳐 구주매각 대금에서 일부 비용 조절이 있다 해도 코로나19로 전 세계 항공운항의 90%가 중단된 상황에서 아시아나항공에 투입해야 할 자금 규모는 조원 단위로 불어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몽규 HDC그룹 회장은 수차례 입장문을 발표하며 금호산업이 아닌 산은에 협상을 원점에서 재검토하자는 의견을 피력해 왔다. 협상의 주체가 매각 주체인 금호산업이 아닌 산은에 넘어간 것은 정부의 추가 지원이나 조건 변경 등을 요구하는 한편, 보증을 해달라는 의미로도 풀이됐다. 더 나아가 HDC는 이번 입장문을 통해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을 거론하며 10여 차례에 걸쳐 정식 공문을 발송하며 재점검이 이뤄져야 할 세부사항을 전달했으나 기본적인 계약서조차 제공받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금호산업이 최근 HDC그룹에 주요 선행조건이 마무리됐으니 계약을 종결하자는 내용증명에 대한 답변임과 동시에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M&A)이 무산돼 추후 소송까지 번지더라도 책임소재가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에 있음을 명시하는 셈이다. 특히 HDC현산은 재실사를 통해 우발채무 등의 의혹이 사실로 발견될 경우 언제든지 계약을 파기할 수 있는 명분을 가질 수 있게 된다.
HDC현산과 금호산업 간 갈등이 심화하면서 업계에서는 M&A 무산 가능성에 힘이 실린다. 실제로 최근 제주항공(089590)이 이스타항공 인수를 포기하며 선례를 보인 터라 HDC현산의 입장에서는 딜이 깨지더라도 비교적 부담이 덜 한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채형석 애경그룹 부회장과 정 회장 등을 만나 M&A 성사에 대해 의견을 피력한 탓에 인수를 무산하기에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면서도 “채 부회장이 먼저 결단을 내린 점이 정 회장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HDC현산이 최후통첩을 하며 공은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에 넘어갔다. 아시아나항공과 금호산업은 이전과 동일하게 거래 종결까지 이행해야 하는 사항들을 성실하게 이행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재실사 제안 수용 여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고 있지 않다. 금호산업 관계자는 “재실사에 대해서는 별다른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아시아나항공 관계자 역시 “아시아나항공은 성공적인 M&A 종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왔으며 앞으로도 당사가 거래종결까지 이행해야 하는 모든 사항을 성실하게 이행할 것”이라면서도 “재실사 진행 여부는 금호산업에서 결정할 문제”라고 말했다./박윤선·박시진기자 see1205@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