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눈]미로같은 부동산 규제의 폐해

금융부 이태규기자


요즘 공인중개사 강사들은 10월 말 시험을 앞두고 학생들에게 “일단 큰 줄기만 공부하라”고 가르친다고 한다. 계속해서 새로운 부동산 대책이 나오다 보니 자잘한 규정까지 암기했다가 최신 내용을 놓치면 시험에서 틀리기 때문에 나온 신풍속도다. 강사들 사이에서는 “30년 동안 강의했지만 이렇게 부동산 정책을 많이 내놓는 정부는 처음”이라는 푸념도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대출규제만 봐도 헷갈리는 게 한둘이 아니다. 7월 10일 이후 투기지역 등에서 3억이 넘는 아파트를 사면 앞으로 전세대출을 받을 수 없다. 다만 그 이전부터 아파트를 보유하고 있다면 가능하다. 그런데 그 아파트 가격이 9억이 넘는다면 지난해 12·16 대책의 규정을 따져봐야 한다. 인터넷 부동산 카페에서는 매일 규제 관련 문의가 올라오고 국민들이 공부한 규정을 댓글로 공유하는 때아닌 ‘집단지성’도 발휘되고 있다. 6·17 전세대출 관련 규정을 설명하는 은행원 매뉴얼은 55페이지에 달하고, 금융당국 내부에서조차 ‘규제가 너무 복잡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물론 정부가 연속해서 정책을 발표했을 때의 목표는 ‘국민의 주거안정’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유리한 계층은 어디일까. 하루 종일 정책을 들여다보는 세무사, 규제 무풍지대를 찾는 프라이빗뱅커(PB)를 뒤에 둔 자산가일까 아니면 생업에 쫓겨 매일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돌아오는 서민층일까. 저소득층을 위해 최저임금을 올렸지만 일자리는 줄어든 ‘선한정책의 역설’은 여기서도 발생한다.

사마천은 역사서 ‘사기’에서 “법망이 가장 치밀하던 때에 간교함과 속임수가 가장 많았다”고 했고 노자는 “법령이 많아질수록 도둑도 많아진다”고 했다. 한 고조 유방은 진나라의 거미줄 같은 법률에 지친 백성들에게 단 3가지 법만 지키면 된다는 ‘약법삼장’을 약속했다. 20년도 못 버틴 진나라와 달리 한나라가 200년이나 지속된 이유다. 정부는 더 센 규제를 내놓으며 시장과 겨루기보다, 누더기가 되는 정책으로 서민의 피해는 소리 없이 커진다는 점을 차분히 돌아봤으면 한다.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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