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자국의 조선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대규모 금융지원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요미우리신문이 27일 보도했다. 가격경쟁 등에서 후발 주자인 한국과 중국의 조선 업계에 밀리며 시장 지배력을 잃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일본 조선 업계가 벼랑 끝에 몰리자 정부가 구제책을 꺼낸 것이다.
연내 시행을 목표로 한 일본 정부의 조선 산업 육성 방안의 주요 골자는 컨테이너선이나 유조선 등을 운영하는 해운회사가 해외에 설립하는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일본 조선 업체의 선박을 구매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지원액은 건당 수백억엔(수천억원)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SPC를 대상으로 하는 일본 정부의 금융지원은 정부가 주도권을 쥔 금융기관이 앞장선다. 일본정책투자은행(DBJ)은 SPC에 돈을 빌려주는 민간은행에 공적보증을 제공하고 국제협력은행(JBIC, 한국의 수출입은행 기능 수행)은 SPC에 직접 대출하는 등 금융기관을 통한 자금지원 방법이 활용될 예정이다.
신문은 일본 정부가 직접 지원에 나선 것은 조선 강국이었던 일본 조선업이 한국과 중국에 밀리며 세계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조선해운시황 분석기관인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1~6월 국가별 누계 수주 실적은 중국이 1위로 351만CGT(145척·61%)를 기록했다. 이어 한국 118만CGT(37척·21%), 일본 57만CGT(36척·10%)로 2·3위를 차지했다. 일본 최대의 조선 업체인 이마바리조선과 2위 업체인 재팬마린유나이티드(JMU)가 합작사 설립에 나서는 등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코로나19 충격이 더해지면서 자구책만으로는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히가키 유키토 이마바리조선 사장은 최근 기자회견에서 “지금과 같은 상태가 계속되면 일본의 조선업이 설 자리는 없어진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일본의 조선 산업 금융지원 방안에 국제 사회는 탐탁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일각에서는 한국 정부의 조선 산업 육성 정책을 시장경쟁을 왜곡하는 것이라고 비난하면서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던 일본이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졌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일본 정부는 지난 2018년 11월 한국 정부가 경영난에 빠진 대형 조선 업체에 대규모 금융지원 등을 통해 시장경쟁을 왜곡하고 있다며 WTO 분쟁해결 절차상의 양자 협의를 요구했다. 이 요구에 따라 한 달 만에 서울에서 열린 양자 협의는 한국 정부가 조선 산업 구조조정은 정당한 정책 집행으로 WTO 규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결렬됐다. 일본 정부는 이후 재판의 1심에 해당하는 패널(분쟁처리소위원회) 구성을 요구할 수 있었지만 1년 넘게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다가 올해 1월 양자 협의 카드를 다시 내밀어 한국의 조선 산업 육성 정책을 견제하기 위한 제소절차를 되살려놓은 상태다. 당시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가 직접적인 금융제공을 포함해 자국의 조선사를 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일련의 조치를 했다”며 “이는 WTO의 보조금 협정에 위배되는 조치”라고 주장했다.
일본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요미우리신문에 “이대로 가면 일본 조선업이 소멸할 수도 있어 WTO 협정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에서 정부가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고 밝혔지만 일본 정부가 지원에 나설 경우 한국 정부가 맞제소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