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점에 시중은행에 방출되는 자금이 쌓여있다. /연합뉴스
정부와 한국은행의 유동성 공급으로 시중 통화량이 3개월 만에 100조원가량 팽창했지만 정작 시중에는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고착화되고 있다. 시중자금이 은행에 대거 예치되고 부동산과 주식시장에 쏠리는 반면 투자와 소비로 연결되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27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최근 통화량(M2)을 집계한 지난 5월 시중에는 3,053조9,000억원의 자금이 풀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한 2월 M2(2,956조7,000억원)에 비하면 97조2,000억원 급증한 수치다. M2는 현금과 요구불예금, 머니마켓펀드(MMF), 만기 2년 미만의 정기 예적금 등 일반적인 통화량 지표다. 한은이 3월 0.50%포인트, 5월 0.25%포인트 등 기준금리를 두 차례 내린 것이 기폭제가 됐다. 이에 더해 정부가 세 차례에 걸쳐 59조원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면서 유동성은 풍선처럼 불어났다. 올해 상반기 은행의 기업·자영업자대출은 77조7,000억원 늘었고 가계대출은 40조6,000억원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 가계·기업대출이 118조3,000억원 늘어났지만 이에 비례해 은행 수신도 108조7,000억원 급증했다. 경제주체들이 위기상황에서 대출을 급속히 늘렸지만 투자와 소비에 나서지 않고 은행에 쟁여놓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한은이 본원통화 1원을 공급했을 때 신용창출을 통해 증가하는 M2를 의미하는 통화승수는 5월 15.06배로 3월(15.26배)에 이어 최저로 떨어졌다. 통화승수가 낮다는 것은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투자와 소비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풀린 돈이 실물경제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통화유통속도 역시 최저 수준이다. 명목 국내총생산(GDP)을 광의통화(M2)로 나눠 계산하는 통화유통속도는 올 1·4분기에 0.64까지 떨어졌는데, 이는 한은이 통화량 집계를 시작한 2001년 12월 이후 가장 낮다. ‘유동성 함정’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최인 서강대 교수는 “한은은 기준금리를 낮추고 정부는 공격적으로 재정확대 정책을 구사했지만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2·4분기에도 통화유통속도는 개선되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손철·조지원기자 runir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