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정세의 선행’ 이야기를 듣고 배범준씨 가족이 올린 글을 찬찬히 읽어보며 예인(藝人)이란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사람인가 돌아본다.
많은 연예인들이 평범함과는 다른 삶을 살다 사고를 친 후에서야 ‘공인으로서 죄송하다’고 한다. 공인이 무엇인지 이해는 하고 저런 말을 할까 싶지만 그러려니 한다. 말 그대로 ‘다른 세상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물론 보이지 않게, 때로는 보이게 세상에 작은 빛이 되는 연예인도 많다. 비보도를 전제로 한 기부나 봉사활동 이야기도 듣고, 한번 눈치껏 봉사활동 하고는 크게 확대 전파하며 이미지 쌓으려 애쓰는 모습도 봤다. 그럴 때마다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느낀다.
문상태는 드라마의 캐릭터일 뿐. ‘극한직업’의 테드창이나 ‘동백꽃 필 무렵’의 노규태나, ‘스토브리그’의 권경민이나…. 최근 출연한 모든 작품에서 캐릭터에 온전히 빠져든 모습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해도 쉴 새 없이 일하는 그가 발달장애까지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어설프게 했다가 보이지 않는 이들에게 온갖 욕만 먹게 되는 분위기에서 자칫 ‘흉내’는 그들에 대한 모욕처럼 느껴질 가능성도 당연히 있었다.
배범준씨 인스타그램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보며 가장 무서웠던 것은 작품이 문상태의 행동과 말투에 집중하기보다 그에게 자체적인 서사를 부여했다는 점이었다. 보통 드라마에서 장애 캐릭터는 분위기를 환기시키고 주인공을 위기에 빠트리는데 국한되는 것에 반해 문상태는 이야기의 원인과 갈등 해결의 연결고리를 맡는다. 26일 방송된 12화에서 전쟁으로 인한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노인에게 동생 강태가 그랬던 것처럼 옷을 덮어주고 이 과정을 설명하는 모습을 보며 그의 성장과 드라마의 결말의 연관성이 아주 깊다는 것을 유추할 수 잇었다.
오정세가 캐릭터에 대한 본질적인 이해와 그로인한 표현이 없었다면 배범준 씨가 ‘지켜줘야 한다’고 반응했을까 싶다. 오직 ‘연기’라는 틀 안에 문상태를 가둬뒀다면 오정세가 그를 찾아가 함께 손잡고 놀이공원을 돌아다녔을까. 사실 외모 뿐만 아니라 캐릭터의 성격까지 살려 연기보다 더 연기같은 진심을 보여줘야 했기에 더 우려스러웠을 수도 있다. 말투와 행동은 배씨와 똑같진 않지만, 지켜주고 싶은 진심은 서로 느꼈으리라 믿는다. 그렇지 않고서야 “친구해도 되겠냐”는 말이 나올 수가 없다.
과거 연극 관련 인터뷰에서 배성우에게 연기관을 물었을 때 그는 “나를 속여야 관객이 속는다”고 답했다. 오정세와 배범준씨의 만남 이야기를 보며 그게 단순히 배우의 연기관이 아니라 예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생관이 될 수도 있음을 깨닫는다.
나의 캐릭터를 나로 받아들이고 그를 친구로 받아들여주는 이가 있다는 것. 이 얼마나 배우라는 직업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에게 감사하고 감격하며 행복한 일인가. 문상태를 지켜준 배범준씨 만큼이나 오정세도 기쁘고 감동하지 않을까.
배범준씨가 오정세에게 선물한 ‘문상태’ 그림
/최상진기자 csj8453@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