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포공항 상업시설 셧다운으로 공항 내 롯데면세점 등 상업시설들의 문이 굳게 닫혀있다. /사진제공=롯데면세점
“건물주가 건물 문을 닫아놓고 세입자에게 수십억원의 월세를 내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공항 면세점을 포함한 김포공항 상업시설 ‘셧다운’이 다음달 초면 4개월째로 접어드는 가운데 공항 면세점 임대료 관련 사업자들의 원성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 정책에 따라 인천국제공항을 제외한 지방 국제공항의 상업시설이 모두 문을 닫았지만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에 이르는 임차료를 매월 지불하기 때문이다. 글로벌 주요 공항들이 자국 관광산업의 기반을 보호하기 위해 임대료를 전액 감면해주거나 임대료 산정 방식을 현재 상황을 고려해 유연하게 변경해주는 것과는 대조적인 행보다. 특히 최근 중국 정부가 ‘하이난’ 등에서 자국 면세사업을 키우기 위해 대대적 지원을 하는 등 글로벌 면세업계 시장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해 경쟁력을 갖춰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도 정작 글로벌 면세시장 1위를 자랑하던 국내 면세업계는 이치에 맞지 않는 정책에 발목이 묶여 글로벌 1위 자리 유지는커녕 고사될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27일 면세업계에 따르면 다음달 6일은 김포공항을 비롯해 김해·제주 등 지방 국제공항의 운영을 담당하는 한국공항공사가 공항 상업시설 운영을 중단한 지 4개월이 되는 날이다. 공항 상업시설 운영 중단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하늘길이 막히자 국토교통부가 국제선 전 항공편을 인천공항으로 일원화한 데 따른 조처다. 하지만 공항 내 입점해 있는 모든 상업시설의 무기한 휴업에도 한국공항공사는 업체들에 임차료를 그대로 지불하라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한국공항공사는 지난달 1일 발표된 정부 방침에 따라 여객이 70% 이상 줄어든 공항의 상업시설 고정임대료에 대해 대·중견기업은 50% 감면해주기로 한 조치에만 응할 뿐 업계에서 원하는 추가적인 대책 호소에는 묵묵부답인 상황이다.
◇매출 제로(0)에도 임대료는 그대로=국토부는 지난 2017년 9월 매출연동임대료 산정 방식을 도입했다. “예측하지 못한 충격으로 인한 매출 급감 등에 대비할 수 있도록 현 고정임대료 대신 매출실적 또는 여객 증감률에 연동되는 임대료 산정체계를 도입한다”는 취지에 따른 것이다. 이에 2018년 이후 국내 국제공항에 입주한 면세점 사업자에게는 월 단위로 매출 증감 추이를 반영한 ‘매출연동임대료’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김포와 제주공항에서 면세점을 운영하는 신라면세점의 경우 현재 매출이 ‘제로(0)’인 상황에 비례해 임대료도 사실상 ‘제로’다.
문제는 2018년 이전에 임대차 계약을 맺은 면세점 사업자다. 롯데면세점의 경우 김포공항에서는 2016년 5월, 김해공항에서는 2016년 12월부터 면세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롯데면세점은 여객 수나 항공편, 매출 증감 등 영업환경 변동과는 상관없이 매월 고정적인 임대료를 내고 있다. 신라와 롯데 모두 김포·김해공항점 매출이 없는 상태임에도 단순히 계약 체결 시기가 다르다는 이유로 한 업체는 사무실·매장 관리비 등 최소 고정비 몇천만원만 내면 되지만 다른 한 업체는 매월 33억원에 이르는 임대료를 납부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업계 관계자는 “공항이 문을 닫았는데 임대료를 50%만 감면해주는 것은 공항공사가 말하는 ‘고통 분담’이 아니라 ‘고통 전가’로 보인다”며 “다른 면세점과의 형평성도 고려해 한시적으로라도 매출연동임대료 납부 방식으로 계약 변경을 하는 정책 집행의 유연함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글로벌 주요 공항, 임대료 감면·매출연동제로 변경=업계의 불만의 목소리에도 한국공항공사 측은 요지부동이다. 하지만 시선을 밖으로 돌려보면 한국공항공사의 이러한 태도는 힘을 잃게 된다. 세계 주요 공항들은 코로나19 사태 초반부터 이미 임대료를 100% 감면해주거나 임대료 산정 방식을 기존의 고정임대료 방식에서 ‘매출연동요율’ 방식으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특히 관광지로 유명한 스페인·태국·아랍에미리트 등의 국제공항은 해당 공항 혹은 공항 내 상업시설이 셧다운한 기간 고정임대료를 100% 감면해줬다. 한 국가의 관광유통산업이 정부의 충분한 관심과 지원 없이는 버티기 어렵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유연하지 못한 공항공사의 이러한 태도에 포스트 코로나 이후 글로벌 면세업계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실제로 최근 중국 정부는 ‘하이난 키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 최남단에 위치한 섬인 하이난은 중국 내국인도 면세품을 구매할 수 있는 중국의 대표 쇼핑관광지로 중국 재무부는 이달 1일부로 하이난 방문객(중국 내국인 포함) 한 명당 면세 쇼핑 한도를 현재 3만위안(약 500만원)에서 10만위안까지 상향 조정했다. 또 내국인 관광객에 대해서는 하이난 방문 후 180일간 온라인으로 면세품을 살 수 있도록 허용했다. 하이난을 홍콩이나 마카오와 같은 세계적인 관광지로 키우겠다는 목표가 여실히 드러나는 행보다.
◇흔들리는 글로벌 면세시장 1위 자리=전문가들은 관광유통산업은 경험과 노하우, 업력과 국내외 네트워크 등이 필요한 비즈니스로 한 번 쓰러지면 복구하는 데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이 종식되고 다시 해외 여행객 방문이 활성화되는 시점에 우리의 관광 인프라가 준비돼 있지 않다면 상당한 기회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현재 국내 상황은 중국 정부가 코로나19를 전화위복으로 삼고 하이난의 면세품 구매 한도 상향 조정, 면세품 품목확대 등 업계가 원하는 대책을 통해 자국의 관광유통산업을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추세가 계속된다면 세계 1위 자리를 지난 수년간 지켜온 한국 면세업계가 곧 그 왕관을 내려놓아야 할 것”이라며 “한국공항공사는 설립 및 존립 목적으로 ‘국가 경제 발전과 국민 복지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함이라고 밝혔듯이 지금이라도 업계에 귀 기울이고 진정으로 국가 경제 발전에 도움이 되는 대책이 무엇인지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일침을 가했다.
/노현섭기자 hit8129@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