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법원 전경. /연합뉴스
여성의 다리를 무려 41번이나 몰래 찍은 남성이 기소됐지만 성폭력처벌법상 불법촬영 혐의는 무죄가 됐고, 그 외 다른 범죄사실로만 유죄가 확정됐다. 수사기관이 절도죄로 붙잡힌 피의자의 휴대전화를 수색하다 물증을 발견하고도 별도의 증거 확보 절차를 거치지 않아 증거능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대법원 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이모씨의 성폭력처벌법 위반 및 절도, 주거침입 혐의에 대한 상고심 선고에서 일부 무죄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이씨는 지난 2018년 4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약 1년간 자전거를 훔치기 위해 25회에 걸쳐 남의 집에 침입하고, 총 675만원 상당의 자전거 4개를 훔친 혐의로 기소됐다. 또한 2018년 1월부터 41차례에 걸쳐 휴대전화 카메라로 여성의 다리를 몰래 찍은 혐의도 받는다.
그는 절도죄로 긴급 체포돼 경찰서로 호송되던 중 범행을 시인하고 자신의 휴대전화 잠금장치를 풀어줬다. 경찰이 휴대전화로 범행 당시 장소를 찍은 사진을 보기 위함이었는데, 여성의 다리를 찍은 사진들도 발견했다. 경찰은 이씨의 휴대전화를 돌려주지 않고 체포 5일 후 임의제출 동의서만 받았다.
재판부는 경찰이 휴대전화를 압수한 지 며칠이 지나서 임의제출 동의 확인서만 받고 적법한 증거 확보 절차를 거치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이씨의 불법촬영 혐의를 무죄로 봤다. 1심이 이씨의 모든 혐의를 유죄로 보고 징역 1년2개월을 선고한 반면 2심은 절도 및 주거침입죄만 유죄 판결하며 형량도 징역 1년으로 낮췄다. 대법원은 이 판단을 확정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확인서에는 절도 관련 범죄의 여죄 등을 확인하기 위해 휴대전화를 제출 받아 압수한다고 기재했다”며 휴대전화를 이씨에게 돌려준 다음 다시 동의를 받아 증거를 확보해야 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경찰이 휴대전화를 가져갈 당시 피고인은 증거 제출에 명시적으로 동의한 바도 없다”고 지적했다. 특히 이씨가 체포 당시 경찰에게 “성범죄 부분은 빼 달라”고 말한 점을 휴대전화 임의제출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근거로 판단했다.
/박준호기자 violato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