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유럽의 배터리 돌진…근심 깊어지는 'K 배터리'[양철민의 인더스트리]

유럽 노스볼트.. 폭스바겐 등에 업고 대규모 계약 수주
중국 CATL은 테슬라 덕에 브랜드가치 및 기술력 높여
테슬라는 자체 배터리 생산 계획하며 판 뒤집기 꾀해
BEP 못넘은 LG화학·삼성SDI·SK이노 배터리 사업에 악재
규모의 경제와 기술 향상 통해 이들 추격 뿌리쳐야


유럽과 중국이 전기차 배터리 역량 강화에 나서며 한국의 ‘포스트 반도체’로 불리는 배터리 산업 패권이 위협받고 있다.

유럽은 세계 최대 자동차 업체인 폭스바겐이 주도가 돼 여타 전기차 부품과 배터리 간 ‘수직계열화’를 꾀하고 있으며, 중국은 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자국 시장을 바탕으로 배터리 기술 고도화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 파나소닉·에코프로(086520)비엠으로부터 공급받는 등 ‘배터리3사’ 중 가장 늦게 사업에 뛰어든 만큼 기술 고도화 등 넘어야할 산이 많다는 점도 숙제다. 한국기업평가 등 신용평가사들이 올들어 SK이노베이션의 신용등급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등 향후 자금 조달 환경도 좋지 않다. 이외에도 국내 배터리 업체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부문에서 지난해 화재사고 등으로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어 투자 여력이 줄고 있다.

국내 배터리 3사는 ‘규모의 경제’ 확보와 ‘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NCMA) 배터리’ 상용화 등으로 한차원 앞서나간다는 방침이지만 이 또한 쉽지 않다.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양극재를 자체 생산하며 주요 업체 중 기술력이 가장 앞서 있다고 평가 받는 LG화학은 현재 양극재 주력 제품인 ‘NCM712’를 보다 출력이 높은 ‘NCM811’로 전환하는 작업을 진행중이지만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SDI가 2027년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힌 전고체 배터리는 일본 도요타가 관련 특허 보유 1위를 기록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반면 자국 정부 보조금 등 ‘묻지마 지원’을 등에 업은 CATL이나 폭스바겐 등 유럽 자동차 업체의 전폭적 지원이 예상되는 노스볼트는 한국 배터리 3사의 성장 전략에 큰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노스볼트는 지난 연말 홈페이지에 한국인과 일본인 인력 30여명이 근무 중이라 밝히는 등 한국 인력 빼가기로 기술을 업그레이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전기차 배터리가 자칫 중국에 주도권을 내준 ‘액정표시장치(LCD)’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폭스바겐은 약 11억유로를 들여 중국 현지 3위 배터리 업체인 궈쉬안 지분을 인수하는 등 ‘유럽-중국’ 동맹이 강화되는 모습도 좋지 않은 신호다.

무엇보다 테슬라가 향후 자체 배터리 생산에 나선다는 전망이 제기돼 전기차 배터리 업계 판도 자체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테슬라는 점유율 기준 글로벌 1·2·3위 업체인 LG화학·CATL·파나소닉을 파트너사로 두고 있는데다 현재 글로벌 전기차 판매량 1위 및 시가총액 기준 글로벌 자동차 업계 1위라는 엄청난 위상을 자랑한다.

테슬라는 오는 9월 15일 ‘배터리 데이’에서 자체 배터리 제조 기술 등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와 관련해 테슬라가 배터리 제조사들에게 납품가 인하를 압박하기 위한 전략적 제스처라는 분석이 나오지만, 지금까지 테슬라 CEO 일론머스크가 허풍에 가까운 선언을 결국 현실화 시킨 역사를 감안해 볼 때 자체 배터리 생산에 실제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일각에서는 현대차와 삼성·SK·LG 간의 ‘K배터리-자동차’ 동맹에 기대를 걸지만 국내 배터리 업체는 보다 많은 동맹군이 필요하다. 시장조사기관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1월부터 5개월간 글로벌 누적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은 LG화학(1위· 24.2%), 삼성SDI(4위·6.4%), SK이노베이션(7위·4.1%) 순으로 이들 점유율을 단순 합치더라도 35%에 육박한다.

국내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은 세계 최고 자동차 부품 업체인 독일 보쉬가 2년전 진출 포기를 선언할 정도로 생각보다 진입장벽이 높다”며 “다만 전기차 업체가 배터리 업체 대비 아직까지 ‘갑’일 수밖에 없는데다 전고체 배터리 등 화학부문의 기술 진보가 예상보다 더디게 진행 돼 한국 배터리 3사만의 ‘분전’만으로는 점유율 확대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밝혔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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